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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칼럼] 참사는 오래 지속된다

입력
2016.04.2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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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고, 너무 빨리 잊는다.

36년 전 봄 광주에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 때, 나머지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참사가 이미 벌어지고 만 이후였다. 참사는 풍문으로 중계되었고,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증언되었다. 비디오테이프에 봉인된 그 비극의 책임자는 분명해 보였고, 악의 소재는 선명해 보였기에,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그 명료함은 이후 현대 한국 정치에 동세를 부여했고, 시민들은 그 책임자를 조준하며 민주화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갔다. 시민의 학살에 책임이 있는 쿠데타의 주역은 여전히 장수를 누리고 있지만, 이만큼 민주화가 진전된 것도 그 참사의 와중에 탄생한 비극적 에너지 덕분이다.

2년 전 봄 남쪽 바다에 어떤 참사가 닥쳤을 때, 그 참사는 미증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배는 여전히 바다 위에 떠 있었고, 참사가 본색을 드러내기까지 배에 탄 사람들은 걷거나, 멀미하거나, 전화를 하거나, 화장실에 갔다. 그들은 이동 중인 일상을 살고 있었고, 그 일상이 물에 잠겼으며, 그 과정은 전국으로 생중계되었다. 퇴근 중의 직장인이 교통법규를 무시한 트럭에 받히는 모습이, 스팸을 구워 먹던 가족들에게 느리게 생중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비극은 우리의 안방으로 무심히 걸어 들어왔다.

이후 2주기가 되도록 해상안전을 위해 발의된 법안은 단 한 건도 국회 관련 위원회에서 심사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해양 사고는 58%나 증가했다. 남부지방에 지진동이 발생해도 국민안전처는 재난경고 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다. 우리의 재난 대처 매뉴얼은 미진하기 짝이 없는데, 부산으로부터 채 200㎞도 안 되는 가까운 곳에 일본 규슈(九州) 겐카이(玄海)원전이 가동 중이다. 세월호 소유자 유병언은 변사체로 발견되고, 선원들이 법정에서 심판을 받았어도, 참사의 원인은 소거되지 않았다. 참사는 어떤 기억장치 속으로도 봉인되지 않은 채 사방으로 생중계되었지만, 이 참사의 원인은 여전히 불명료하다. 에너지는 방전되고 있으며, 비극은 언제든 다시 우리의 안방으로 무심히 걸어 들어 올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월호 이후의 사태라는, 또 하나의, 긴 참사를, 아직, 겪는 중이다. 이 참사는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중계되지 않는다. 국가정보원 퇴직자공제회인 양우회가 운영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배에 승객들이 무심코 승선했던 것처럼, 엘리트가 담합해 운영 중인 어떤 부실한 여객선 속에서 우리는 무심코 태어났다. 승객과 화물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채 세월호가 서둘러 출항했듯이, 이 여객선도 우리를 태우고 분명치 않은 목표를 향해 일단 황급히 항해 중이다. 이 배의 어린 승객들은 사방이 캄캄한 인생의 바다에 수장되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상급학교에 진학해야 한다. 입시학원에서는 시험에 세월호에 관한 주제가 나올 수 있다며 거대 유람선과 바다 표현 연습을 시킨다. 입시생들은 “난간에 매달려 아래로 낙하하는 인물의 절망감을 강조하고, 물에 둥둥 떠 있는 사람을 많이 그릴수록 칭찬받는다.” 해양 연수원에서 세월호 선원들을 대충 교육했듯이, 이 땅의 많은 교육기관은 진학에 성공한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어쨌거나 본전을 찾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자격증은 선심 쓰듯 남발된다. 과적상태로 불어난 자격증 소지자들은 이제 암초가 가득한 좁은 취업 시장 속으로 운항을 감행해야 한다. 상부에 보고를 하느라 해경이 구조 활동에 전념하지 못했듯, 가까스로 취직에 성공한 이들은 상관의 눈치를 보느라 담당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명은 전에 없이 늘어났기에, 심신이 노쇠해도 운항정지를 선언할 수는 없고 어떻게든 긴긴 인생 동안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한다.

이들이 야근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세월호 합동분향소에 들렸을 때, 다음과 같은 유족의 편지가 벽에 매달려 있었다.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에 가.” 엄마는 이미 지옥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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