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처음에 육아 분투기 기고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나는 대다수의 워킹맘들에 비해 사정이 좋은 편이라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할 것 같아서 망설였다. 첫째 아이를 낳고 바로 친정에 합가를 해서 살 수 있었고, 둘째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독립하며 만난 입주 아주머니가 너무 좋으신 분이라 큰 걱정 없이 아이들을 맡길 수 있었으며, 입주 아주머니를 쓸 만큼의 경제력이 있으니, 워킹맘들 중에서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워킹맘들은 임신 또는 출산을 겪으며 나에 비하여 훨씬 상황이 좋지 않다.

우연히 다른 워킹맘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회사에서 보육을 주제로 한 짧은 간담회를 준비하며, 나를 포함하여 워킹맘들 셋이 평일 늦은 밤 시내 카페에서 만났다. 출산, 육아, 이로 인한 퇴직과 재취업까지 생생한 경험을 나누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어려움은 단순히 너무너무 힘든 육체적인 고통(물론 이것도 존재한다!)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변호사라는 자격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두 아이를 다 회사를 다니면서 낳았고 몇 달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고 바로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만큼 운이 좋지 못하다.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서 임신 사실을 막판까지 숨겨야 했던 이야기, 임신했다고 말하는 순간 계약기간마저 보장받지 못한 현실, 출산하고 복귀하니 모유를 따로 보관하려 한다는 이유로 유난 떠는 엄마가 되어 버린 사연, 결국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된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모두 꿈이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여자들이었는데, 원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일자리를 잃고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와 씨름하며 보낼 때 느끼는 좌절감과 절망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다 하는 일과 배경이 달라도, 우리 사회의 심각한 저출산에 대해서 내놓는 해법은 비슷했다.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야 아이를 낳죠. 노동시간도 정말 중요해요.” 부부가 둘이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저녁이 있는 삶, 이른 퇴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모두 포기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 엄마가 되는 여성들은 일이든 사회적 활동이든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육아를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에서 꿈을 잃어버리고 좌절하는 사연들을 보고 들으며, 많은 여성들은 출산을 포기한다. 아이냐 일이냐 양자택일해야 하는 사회에서 출산률이 올라갈 리가 없다. 아이를 낳는 것이 인생의 장애가 아니라 행복한 삶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노동환경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장시간 노동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 늦은 밤에도 바로 바로 배달되는 음식, 주말에도 여는 가게, 야근과 회식, 저녁까지 아이를 봐주는 어린이집이 익숙하지만, 많은 나라에서는 이런 것들은 정상이 아니다. 내가 잠시 살았던 미국이나 프랑스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가게는 늦은 밤이나 주말에는 문을 닫고, 직장인들은 오후 4, 5시가 되면 퇴근이 시작되고, 가족들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조금 불편하고 천천히 가도 이런 사회가 좀 더 정상적이고, 행복한 육아도 가능한 곳이 아니겠는가.

솔직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일하는 엄마라는 이유로 공감하고 같이 울고 웃으며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뿔싸, 이 간담회를 진행하기 위해서, 나의 ‘저녁’은 사라졌구나. 밤 10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며 깨달았다. 저녁이 있는 삶! 행복한 육아를 위하여 나부터 사수해야 할텐데.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ㆍ변호사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