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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전인지처럼, 오바마처럼

입력
2016.04.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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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지의 맹활약 비결은 즐기는 골프

대화 설득으로 여소야대 넘은 오바마

박 대통령, 즐기는 정치로 위기 넘길

17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 코올리나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대회에서 버디 성공 후 활짝 웃는 전인지 선수. 뉴시스
17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 코올리나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대회에서 버디 성공 후 활짝 웃는 전인지 선수. 뉴시스

골퍼 전인지 선수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에서 1타 차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LPGA 투어에 데뷔한 올해 이번 대회까지 네 차례 출전해 준우승 세 번에 3위 한 번이라는 성적을 올린 것은 대단한 활약이다. 슈퍼 루키라는 평가에 전혀 손색이 없다. 지난해에는 한ㆍ미ㆍ일 메이저 대회를 모두 정복해 세계의 골프팬들을 열광시킨 그다.

전인지 선수는 기본기가 탄탄하고 스윙도 흠잡을 데 없지만 최대 강점은 바로 골프를 즐긴다는 것이다. 아무리 긴장된 상황에서도 즐겁게 치자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항상 미소가 그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 그대로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웃는 모습은 얼마나 예쁜지. 동료 골퍼들도 그에게서 즐기는 골프를 배워 큰 성과를 내고 있다니 전인지는 즐기는 골프의 전도사인 셈이다.

자신이 택한 직업을 즐기는 사람은 행복하다. 자신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만든다. 언제부턴가 나는 전인지 선수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리곤 한다. 박 대통령은 직업 정치인이다. 그런데 직업인 정치를 즐기지 못한다. 즐기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멀리하고 가능하면 외면하려고 한다. 국회의원과 여당 대표시절부터 지시하고 보고 받고 결정했을 뿐 정치를 하지 않았다.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싫어하는 경향은 박 대통령에게는 생래적인 것 같다. 삶의 역정 탓이 클 것이다. 대통령의 영애로, 퍼스트 레이디로 권위적 환경에서 살다가 10ㆍ26 이후엔 거의 반강제적으로 은둔형 삶을 살았다. 친구들이나 일반 사람들과 어울려 부대끼고 교제하며 사회성과 정치력을 키울 여건이 못됐다. 개인적으로 참 불행한 인생 역정이다.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그 정도가 한층 심해졌다. 비교적 정치에 친숙했던 YS나 DJ도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는 정치보다는 통치 쪽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하물며 정치적 타협과 양보 경험을 거의 갖지 못한 박 대통령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적막강산의 청와대 관저에서 홀로 밤을 지새다 보면 비명에 간 부모님 생각에, 국가적 과제에 비장해지고 사명감이 앞서기 마련이다. 여기에 타협과 양보의 정치가 끼여들 여지는 없다. 당내의 다른 의견은 배신의 정치일 뿐이고, 야당의 반대는 국정 발목잡기에 지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18일 4ㆍ13 총선 참패 후 처음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도‘사명감 중독’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사명감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명감이나 혼신의 노력이 아니라 정치다. 대통령이 아무리 혼신의 노력을 다해도 167석에 달하는 야당이 협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서 야당을 상대로 대화하고 설득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통치가 아니라 정치다.

미국 얘기 쉽게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국이야말로 완벽한 여소야대에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도 오바마 정책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건강보험개혁법안을 관철시키고 이란 핵 협상을 타결하고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이뤄냈다. 하나같이 공화당이 강력하게 반대했던 쟁점들이다. 골프치고 식사에 초대하고 전화통 붙잡고 설득하는 정치로 거둔 성취다.

그렇게 태어나고 성장했기에 어쩔 수 없다고? 그런 말씀하지 말았으면 한다. 박 대통령이 내세운 주요 국정 과제는 제대로 해결된 게 없다. 권력누수 속에 1년 10개월을 식물정부로 보내지 않으려면 달라져야 한다.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즐기는 정치가 답이다. 박 대통령 자신도 행복해지고 국민들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다. 그런 정치를 휴전선 북쪽으로 확대해 간다면 금상첨화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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