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주요 책임자들은 지금…

편집자주 : 이 기사는 PC뿐 아니라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제작 되었습니다. 기사 원문보기를 눌러 한국일보닷컴에서 더 많은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권한과 책임은 실과 바늘이다. 권한이 크면 책임도 커야 마땅하다.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흘렀다. 하지만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향한 우리 사회의 발걸음은 느리기만 하다. 그 발걸음은 책임자가 책임을 지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간 세월호 침몰과 구조 실패의 원인을 제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사법 처리되고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희생의 무게만큼 책임을 지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모두 우두머리였다. ‘책임을 진다’고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전직 장관과 청장 타이틀은 되레 훈장이 돼버렸다. 책임자의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 역시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은 뒤 승승장구 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의 참사 당시 모습과 지금 모습을 비교해 살펴봤다.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 / 현 20대 국회의원 당선자(5선)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에서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왼쪽)과 4ㆍ13 총선에서 승리해 20대 국회의원이 된 이주영 당선자. 한국일보 자료사진ㆍ연합뉴스

전) 장관 취임 한 달 만에 세월호 참사를 맞았다. 선박사고와 연안여객선 안전 관리의 주무 부처 수장인 그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 등을 맡았다. 참사 후 136일간 진도 팽목항에 머무르며 사실상 정부를 대표해 희생자ㆍ실종자 가족과 대화했다. 이후 ‘팽목항 지킴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세월호 1차 청문회에서 “궁극적으로 범대본부장인 해수부 장관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후) 어쩌면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이 전 장관은 책임을 사퇴로 갈음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전 장관의 사표를 수리한 뒤 “공직자의 참된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장관에서 정치인으로 돌아온 그는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친박계의 핵심을 꿰찬 그는 올해 3월 정치 신인들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현 지역구인 경남 창원마산합포구 단독공천을 확정 지은 뒤 4ㆍ13 총선에서 이겨 5선 의원이 됐다.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
세월호 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는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왼쪽). 오른쪽 사진은 참사 전 책을 출간했을 때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 감사원 조사 등에서 “현장 지휘는 지방해경청과 해경서가 하는 것이 맞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박 대통령의 해경 해체 발표에 대해 “겸허히 수용한다”고 밝혀 조직 내부에서도 질타가 쏟아졌다. 청문회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해 비판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보름 여 전에 열린 ‘해경 핵심가치 함양 워크숍’ 특강에서 “전문지식도 중요하지만 우선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가짐과 열정을 가슴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후) 2014년 11월 퇴직. 해적 전문가로 통하는 김 전 청장은 세월호 참사 한 달 전 ‘바다와 해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퇴직 후에도 책을 냈다. 지난 3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학술총서인 ‘해양안전 해양보안’을 집필했다. 개발원은 ‘안전한 해양 활동을 위한 국내외 법ㆍ제도와 조치를 한 권의 책에 집대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고향인 하동 지역에서 영어강의 등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강병규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
세월호 참사 당일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사고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는 강병규 전 안전행정부 장관(왼쪽). 그가 세월호 1주기인 지난해 4월 16일 영남대에서 ‘지방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리더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특강(오른쪽)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 재난ㆍ안전 주무 부처 최고 수장이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안전을 강조하며 이름을 바꾼 부처의 2대 장관이 됐지만 행정 전문가로 안전과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았다. 취임 열흘 만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강 전 장관은 2014년 6월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기관보고에서 ‘골든 타임을 얼마로 보느냐’는 질문에 “(저는) 구조 전문성이 없다”고 답했고 구조 방식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말했다.

후) 참사의 책임을 지고 2014년 7월 장관직에서 물러나 3개월 단명 장관으로 남게 됐다. 참사 직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맡았다. 중대본은 늦장 대응, 오락가락하는 구조 인원, 불명확한 현장 상황 전파 등 우왕좌왕했고 결국 범대본에 역할을 넘겼다. 퇴임 후 강연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강원도 출연기관인 강원발전연구원 자문위원, 행정자치부가 지원하는 민관소통위원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우예종 당시 해수부 기획조정실장 / 현 부산항만공사 사장
세월호 참사 한 달여가 지난 뒤 진도군청 상황실에서 수색구조지원 장비기술연구 전담반 회의를 하고 있는 우예종 전 해양수산부 기획조정실장(왼쪽). 그가 부산항만공사 사장 취임 후 지난해 열린 제3회 부산국제항만컨퍼런스에 참석해 발언(오른쪽)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참사 직후 중앙사고수습대책본부 총괄팀장과 범정부사고대책본부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사고 수습 등을 책임졌다. 상황 판단이 힘든 상태에서 얼마나 신속ㆍ정확하게 상황을 전파하느냐에 따라 구조의 성패가 바뀔 수 있다. 우 전 실장은 세월호 청문회에서 생존자 수가 틀린 보고서 작성 경위에 대해 “급박한 상황인데 통신이 되지 않아 해경 현지 파견관에게 들은 중복 숫자를 적었다”고 답해 세월호 유족들의 항의를 받았다.

후) 참사 후 더 잘 나가는 책임자 중 한 명이다. 2014년 12월 해수부 기획조정실장 사임 후 인천대 초빙교수를 거쳐 지난해 7월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 논란 속에 부산항만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우 사장 취임 전 부산 지역 언론인 국제신문은 “이번 공모에 해수부 간부 출신 유력설이 파다하다”며 우 사장을 낙하산에 비유한 비판적 기사를 쓰기도 했다.

유병언 전 청해진해운 회장
유병언 전 청해진해운 회장이 세월호 참사 후 수사망을 피해 도주하던 당시 언론에 공개된 모습(왼쪽)과 변사체로 발견된 후 이를 보도하는 방송 화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 세월호의 실소유주이자 전 세모그룹 회장이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조직도에 ‘회장’으로 이름을 올려 급여와 자문료 등을 지급 받으며 경영에도 직접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에 자신의 개인전시실을 만들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지시하고 이 때문에 복원성 문제도 보고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1,291억원대 횡령과 배임, 159억원대 증여세 포탈 혐의를 받았다.

후) 세월호 참사 원인으로 꼽히는 선박 관리는 비리로 얼룩져 있었다. 유 전 회장은 검찰 수사를 피해 도주 중이던 2014년 7월 22일 전남 순천 별장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일부에서는 유씨 일가와 청해진해운에 대한 수사가 진짜 책임자들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수법이라고 꼬집었다. 유씨의 차남 혁기씨는 미국에서 종적을 감췄고 장녀 섬나씨는 프랑스 법원에서 송환 거부를 위한 법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환직기자 slamhj@hankookilbo.com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고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반론보도문

본 지는 지난 4월 17일과 18일 보도에서 “유병언 전 회장이 세월호에 개인전시실을 만들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지시하고, 이로 인한 복원성 문제도 보고 받았으나 무시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관해 고 유병언 전 회장 측은 “유병언 전 회장은 개인전시실 설치를 주목적으로 하여 세월호의 증축을 지시한 사실이 없고, 복원성 문제를 보고 받고도 이를 무시한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