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2주기] 두 번째 봄 <상> 아픔마저 성장하다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되어 가지만 아직까지 9명의 미수습자가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고, 사고 현장에서는 선체 인양준비가 준비중이다. 2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의 모습.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년 지나도 사고 원인조차 몰라
“우리 사회 아직도 바뀐 게 없어 진실 밝혀야만 비극 반복 안 돼”

“왜 죽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250명의 친구들을 잃었어요.” 2년 전 차디 찬 봄 바다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김민지(19ㆍ가명)양은 왜 자신이 “살려달라”고 그토록 외쳤어야 했는지, 친구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여전히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었고 학교와 일상이 무너졌다.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던 수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사고 원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민지는 “이제 친구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라도 알고 싶다”고 했다.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는 아니어도 좋으니까 내 친구를 왜 살릴 수 있었는데 죽게 놔뒀는지는 알고 싶어요.”

세월호 사고를 직접 겪은 생존자들과 희생자 가족들은 왜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다고 절규한다. 사고 진상 규명 과정에서 이들이 무엇보다 밝히고 싶은 것은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배 안에서 데려오지 못한 이유다.

민지는 “사고가 정부 탓에 일어났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을 살렸는지 살리지 않았는지 묻는다면 확실하게 ‘안 살렸다’고 답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고 이후 학생들이 살 수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생존자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되어 가지만 아직까지 9명의 미수습자가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고, 사고 현장에서는 선체 인양준비가 준비중이다. 2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의 모습.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딸 경하(19ㆍ가명)가 바다에서 겨우 살아온 아버지 최모(45)씨는 아직도 딸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다리에 깁스를 한 경하는 안산으로 올라오던 길에 “대체 왜 이렇게 된 거냐”고 물었지만 아버지는 대답을 못했다. 아직도 답을 모른다. 최씨는 생존자들에게도 진상 규명은 절실하다고 말했다. 평생을 안고 갈 상처를 지닌 아이들이 혹시라도 스스로 안 좋은 마음을 먹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이들을 평생 지켜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니고 있다”며 “치유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사고 이유를 밝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년 간 우리 사회가 바뀌었냐는 물음에 이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은 요원해 보이고 안전불감증도 여전하다. 정부는 말뿐인 대책만 내놓고 진실은 외면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하는 이들이 바라는 건 단순하다. 같은 참사의 반복을 막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 세월호 생존자인 박준혁(19)군은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는 사회가 되는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세월호 세대’ 생존 학생들에게 이 일은 본인들 몫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부모님들이 하고 있지만 이제는 성인이 된 저희가 당연히 해야죠.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노력하다 보면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준혁이의 다짐이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조응천에 ‘朴대통령 세월호 7시간’ 묻자 “딜리트”

14일 오전 서울 중구 YWCA 대강당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에서 유가족들이 참사 당시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2015.12.14.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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