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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여론조사에 휘둘린 저를 반성합니다

입력
2016.04.1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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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5일 전, 한국일보 1면 톱에 ‘與心 속속 이탈, 여대야소 전망 흔들린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선거 막판 새누리당 지지율이 30% 미만으로 떨어졌고, 국민의당 지지율은 급격하게 올라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권 지지층의 균열에 따라 여대야소 전망이 깨질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이 기사를 1면 톱에 실은 신문사에 소속된 기자였는데도 말입니다. 바로 전날 새누리당 지도부가 당내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여소야대가 될 위험이 있다”며 ‘긴급회의’를 개최했을 때도 페이스북에 ‘엄살’이라고 썼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할 180석이 위험하다는 뜻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이후 타 신문에 계속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더 굳어졌습니다. 한 통신사가 무려 4개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내놓은 총선 사흘 전 예상치는 새누리 157∼175석, 더민주 83∼100석, 국민의당 28∼32석이었습니다. 리얼미터는 선거 이틀 전에 "새누리 155~170석, 더민주 90~105석, 국민의당 25~35석"을 예상했습니다.

이 같은 여론조사는 체감온도와는 달랐습니다. 제 지인 중 새누리당을 찍겠다는 사람은 60세 이상 노년층을 제외하고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제 지인이나 소셜미디어를 믿으면 큰 코 다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슷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게 마련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선입견이 진실을 보는 눈을 가렸습니다. 선거 결과는 모든 연령이나 계층을 골고루 반영하는 여론조사 결과와 다릅니다. 투표율이 높아 봤자 채 60%가 못 되는 나라에선 ‘절실한 마음으로, 반드시 투표장에 나갈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에 의해 판가름 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위안부 합의,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소통에 일부 여당 지지자들의 마음조차 불편해진 상황에서 ‘진박’ 공천 논란은 그들에게 한 표를 던질 의욕을 상실케 했습니다. 반면 야당 성향 유권자들은 공천 불만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분명 ‘절실한 주체’가 변하는 기류를 느끼고 있었으나 불신했습니다.

누구나 선입견을 갖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언론이나 언론인은 그러한 색안경을 벗고 진실을 보고 전달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과학적 분석 방법을 연구하고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이 인용한 한심한 여론조사는 사람들의 눈을 가릴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제가 속한 신문사와 함께 일한 여론분석가는 실체에 근접한 전망을 했는데도 저는 그걸 믿지 못할 정도로 강한 선입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언론계 전체로 눈을 돌려봐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철 지난 북풍이 선거기간 내내 불었습니다. 공영방송 채널을 켜면 북쪽 방송인지 남쪽 방송인지 모를 정도로 북한의 도발과 위협 리포트가 도배를 했고, 선거 막판에는 집단 탈북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습니다. 선거가 끝나자 “대통령의 오만 때문에 졌다”고 사설에서 호통 치는 신문들은 선거 기간에는 정부의 독선에 침묵했었습니다. 국민들이 케케묵은 선동에 놀아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언론이 진실 보도의 의무 대신 선거 국면에서 하나의 플레이어로 뛰는 모습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화려한 개표방송이나 신기술보다 선거 보도의 본연에 충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로 남았습니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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