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를 멈추다’(STOP PRESS)라는 문구가 들어 간 인디펜던트지 마지막 종이판. 런던=EPA 연합뉴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지난 주에 마지막 종이 신문을 냈다. 신문사가 문을 닫은 것은 아니고 온라인만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위키피디아 항목의 앞 문장은 이제 인디펜던트를 ‘온라인 뉴스페이퍼’라고 소개하고 있다. 종이 신문의 쇠퇴라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건만 그래도 짠한 마음이 든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19세기 초엽 독일 신문 ‘알게마이네 차이퉁’에서 읽은 제르멘 드 스탈 부인의 베를린 동정 기사를 메모해 놓았다.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스탈 부인은 당시 독일 여행 중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제주도 소길댁 이효리가 채식 식당에서 일일 셰프를 했다는 걸 신문에서 읽은 거나 마찬가지다.

또 헤겔은 다음과 같은 아포리즘을 적어 놓기도 했다: “아침 일찍 신문을 읽는 것은 일종의 현실주의적 아침 기도다.” 아침 기도 대신 신문 읽기를 택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이전과 비교해서 삶이 더 세속적으로 되고, 아침은 바빠졌으며, 사람들이 더 값싸면서 덧없는 세상사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 후 신문은 TV에, 그리고 다시 TV는 인터넷과 스맛폰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뉴스(news)란 말은 형용사 new를 명사로 바꿔서는 거기에 복수 어미를 붙인 것이다. 유럽에서 신문이 그 전부터 있었지만 ‘뉴스페이퍼’란 말은 1660년대에서야 생겨났다. 근대 이전의 중국과 한반도에서는 저보(邸報)와 당보(塘報)라는 게 있었다.

저보는 조보(朝報)라고도 했는데, 조선에서는 승정원에서 만들어서 필사를 해서 돌렸다. 주로 국정의 주요 소식과 민간에서의 여러 기문기사(奇聞奇事)가 실렸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면, 당보는 안팎 정세에 관한, 상대적으로 시급하고 중요한 첩보를 다루었던 것 같다.

유럽에서 신문은 산업혁명을 맞아서 대중적으로 되었다. 종이 양면을 동시에 인쇄할 수 있는 기계가 도입된 이후에야 시사적 사건이나 사안을 빠르게 인쇄해서 유포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활판 인쇄술 이후에야 책이 대중적 독자를 얻을 수 있었던 것과 비교될 만하다.

미국에서 1830년대에 대량생산된 타블로이드 판형의 신문들은 ‘페니 프레스(penny press)’ 신문이라고 불렸다. 이전보다 1/6 정도 가격의 신문이 생겨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부르주아들뿐만이 아니라 근로대중들도 신문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니까.

종이 신문이 인터넷 신문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편집이다. 그것은 뉴스 기사들이 제한된 수자의 종이에 인쇄된다는 물리적 한계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물론, 둘 사이에는 기사 길이와 사진 이미지 및 동영상 등의 사용 방법, 그리고 유저와의 인터페이스 등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종이 신문의 핵심은 역시 편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주로 변기 위에서 혹은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종이 신문을 본다. 본다기보다는 지면과 지면 사이, 그리고 기사와 기사 사이를 미끄러져 나간다. 이런 미끄러짐은 내 맘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편집된 지면과 기사라는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구조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넘기고 펼치고 접어가면서 종이 신문을 읽는 신경생물학적 과정은 매우 독특하다. 전자책을 읽는 것과 종이책을 읽는 것이 다르듯이, 인터넷 신문과 종이 신문을 읽는 것도 엄연히 다르다.

신문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거나 책 표지를 싸던 시절 어린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대문 앞의 신문을 아버지께 가져다 드리곤 했다. 그때 매번 일부러 맡아 보았던 신문의 잉크 냄새는 내게는 도시의 냄새였고 근대성의 냄새였다. 반면에, 정육점에서는 고기를 신문 종이에 싸주기도 했고 푸세식 변소에서는 쭈그린 채 신문 종이로 밑을 닦기도 했다.

인쇄 기술이 낮았던 시절에는 한참 신문을 읽다 보면 손가락이 지저분해지곤 했다. 어느 새엔가 신문에서 점차 한자가 없어지고, 모든 신문들이 차차 가로쓰기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신문 스크랩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또, 요즘 신문들에서는 시사 만화나 만평을 찾아 보기가 아주 힘들다. 온라인 신문은 공짜이고 빠르지만, 그 대신 우리는 종이 신문의 정겨운 촉감을 잃어버렸다. 인디펜던트가 온라인 뉴스페이퍼로서 오래 살아남기를 바란다.

문화평론가

英 인디펜던트, 종이신문과 작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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