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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러시아에 인터넷실명제가 도입된 후

입력
2016.03.2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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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14년 8월부터 러시아에서 공공장소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때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한다는 법이 발효됐다. 그 전에는 카페나 지하철 등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와이파이 인터넷을 실명확인 절차 없이 무료 접속할 수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테러 우려가 커지면서 인터넷을 통한 불법 활동을 막기 위해 인터넷 사용자는 누구나 실명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 실명제가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인터넷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던 러시아 사람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비정부단체(NGO)들은 새 법안에 따라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위해 입력해야 하는 이름과 여권번호가 민감한 개인정보라고 지적하면서 이 법안이 언론 자유나 개인정보보호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실명제 효율성에 대해 한국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한국 웹사이트를 이용할 때 특히 외국인들의 실명확인 절차가 지나치게 번거롭고, 개인정보 유출 우려 표현의 자유 침해 등의 소지도 적지 않아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과연 인터넷 실명제가 안전한 인터넷을 구성해 주는 도구인가, 정부가 인터넷 유저를 감시하는 방법 중 하나인가.

러시아에서 와이파이 실명제 도입으로 인터넷 안보가 강화된다는 점에서 사용들에게 번거로움을 줄 수 있으나 무조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인터넷이 전통 대중매체들보다는 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아예 통제할 수 없다면 해악이 될 수 있다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물론 중동의 민주화 운동 열풍인 ‘아랍의 봄’은 인터넷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파리테러 등과 같은 범죄 역시 인터넷의 익명성을 틈타 조직되고 동원된 사건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악용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테러범들이 범행을 모의하고 계획한 것을 밝혀졌다. 가짜 계정을 만들어서 인종차별, 반정부 테러 위협, 아동음란물을 배포하는 것도 인터넷의 익명성이 악용되는 사례다. 점점 더 인터넷이 우리 일상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대중을 관리하기 위한 도구로 인터넷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테러 우려가 아주 높은 요즘은 정부가 인터넷을 통제하려고 하는 일은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그리고 인터넷 실명제는 바로 이런 통제의 방법 중 하나라고 러시아 정부 입장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이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또 다른 사례는 바로 악성 댓글이다. 한국에서는 악성 댓글의 대상자가 된 사람이 자살을 한 사례도 적지 않을 정도로 인터넷 댓글의 위력은 엄청아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을 이용해 오프라인에서는 불가능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 인터넷 사용자들은 자기의 댓글이 얼마나 파괴력이 큰지 알지 못한 채 거친 언사를 사용한다. 러시아에서는 아직 악성 댓글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하지만 빡빡한 사회체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 인터넷에서 화를 퍼붓는 것이라면 러시아도 조만간 한국과 같은 악성 댓글이 늘어날 것이다. 한국 네티즌들의 댓글을 읽어 보면 인터넷 실명제를 더 강화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러시아 정부는 콘텐츠 불법 제작 및 배포를 막는 것도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 이유 중에 하나라고 꼽혔다. 2014년까지 러시아는 인터넷 저작권 침해 분야에서 세계 2위였다. 통계에 따르면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불법 다운로드 횟수가 극히 줄어들었다. 10년 넘게 불법으로 운영했던 러시아 최대 다운로드 포털 러트랙커(Rutracker)가 문을 닫았고, 성인물을 배포하던 포탈이나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포탈들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아직까지 인터넷에서 불법 콘텐츠 문제가 100% 해결된 것이 아니지만 실명제를 도입으로 인해 첫발을 내디뎌진 것은 확실하다.

러시아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 후 1년 반이 지난 지금 조금씩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반대 소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인터넷 실명제가 그렇게 나쁜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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