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밝히는 빛이 곧 시대정신(Zeitgeist)이다. 다시 말해, 시대정신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이다. 시대정신을 발견하는 일차적 주체가 국민이라면, 그것을 주조하는 실질적 주체는 정부와 국회다. 정부와 국회는 국민 다수의 진단 및 전망을 대리하고 대의하며 대표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가 돌아오면 시대정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가오는 4ㆍ13 총선이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는 시대정신에 대한 토론이 과거보다 크게 줄어 들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과 달리 지역 대표를 뽑는 총선에선 국가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시대정신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다. 둘째, 민주화 이후의 시대정신으로 제시된 경제민주화·복지국가·사회통합 등 주요 비전들이 앞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어느 정도 충분히 논의돼 왔다.

상황이 이럼에도 시대정신을 다시 주목하는 까닭은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에 있다. 저성장과 불평등, 청년실업과 노후빈곤, 불안사회와 분노사회, 그리고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긴장 고조는 2016년 대한민국의 현재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현상들이다. 국민 다수가 현실에서 불안과 분노와 고통을 겪고 있다면,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대안과 비전과 정책을 포괄할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것은 정치사회에 부여된 본연의 역할이다.

지난 두 달 여 동안 진행된 공천 과정을 지켜보면 총선의 시대정신을 말하기가 민망해진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여당이든 야권이든 예외 없이 권력이라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의 민낯이 있는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치는 본디 가치 경쟁이자 권력 투쟁이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갖는다. 정치의 궁극적 목표가 가치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이번 공천은 한국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증거한 동시에, 정치의 핵심적 본질이 도덕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공천 제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계몽시킨 셈이다.

지금 이번 공천에 정치적 면죄부를 주자는 게 아니다. 공천에 문제가 심각했다고 해서 선거를 무시할 순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더욱이 이번 총선은 내년 12월에 치러질 대선의 전초전인 만큼 총선에서 대선으로 가는 도정에서 시대정신을 분명히 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해선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인 저성장과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정신의 모색이 필요하다. 현재 새누리당은 ‘경제 활성화’를, 더민주당은 ‘경제 민주화’를, 국민의당은 ‘공정 성장’을, 정의당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내세운다. 문제는 경제 활성화와 경제 민주화가 국민 다수의 시선에선 절반의 시대정신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낙수효과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경제 활성화만으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고, 제4차 산업혁명의 도전이 구체화되는 상황에서 경제 민주화만으론 저성장을 해결하기 어렵다. 경제 활성화와 경제 민주화는 이중의 과제다. 이 두 목표를 생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제3의 시대정신이 제시돼야 한다.

둘째, 불안사회와 분노사회를 해결할 새로운 시대정신 또한 중요하다. 불안과 분노의 일차적 원인은 경제적 불평등에 있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주목할 것은 규범적·도덕적 자원의 고갈이다. ‘헬조선’ ‘수저계급론’ ‘각자도생’ 등이 함의하는 바는 공동체의 붕괴이며, 이 붕괴를 제어하고 역전시키는 데에는 사회·문화 통합을 새롭게 일궈내는 방법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 요컨대, 저성장과 불평등, 그리고 공동체 해체에 맞설 시대정신을 주조하고 추구해야 할 숙제를 우리 정치는 시급히 풀어야 한다.

이번 공천에서 볼 수 있듯 정치는 우리에게 불신과 혐오를 안겨준다. 그렇다고 정치 없이 살아갈 수도 없다. ‘야당심판론 대 정권심판론’만으로 총선을 치르기에 우리 사회가 놓인 현실은 너무도 절박하다. 총선이 얼마 남아 있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시대정신의 경쟁을 보고 싶을 뿐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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