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다’는 영어 hip에 한국어 ‘-하다’를 붙여서 만든 말이다. hip은 일차적으로 허리와 다리가 만나는 신체 부분을 가리키지만, 형용사로서 ‘최신 유행이나 세상 물정에 밝은, 잘 알고 있는, 통달한’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런 의미로서는 1904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강남의 귤이 강북에서는 탱자가 되듯이, 힙하다는 말은 트렌디하다는 말과 비교해서 한국에서는 영어권에서보다 상당히 더 큰 문화적 차별성을 갖는다. 이제 누구나 다 쉽고 편하고 싸게 트렌디한 것을 지향하고 성취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좀 더 새롭거나 특이한 것, 혹은 남다른 것을 찾아서 지향하는 스타일을 가리켜서 힙하다고 한다. 힙하다는 것은 단순히 트렌디한 것보다는 좀 더 팔팔하고, 거칠고, 살아있는 날 것에 대한 선호나 지향을 뜻한다. 그러니까, 힙하다는 말 자체가 힙한 것이다.

hip에 행위자를 뜻하는 접미사 ‘-ster'을 붙이면 힙스터가 된다. 미국에서 힙스터는 1990년대 이후 대두한, 하위문화 중심의 소비 코드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힙스터는 주로 이삼십대의 젊은이들이고, 주류 정치나 문화와는 독립적인 사고방식과 대항문화적 가치, 진보적인 정치 성향, 환경 친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과 문화, 지식 그리고 유머 등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미국의 힙스터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는 쫄 청바지, 기어 없는 자전거, 담배, 질 좋은 차와 커피, 인디 음악, 독립 영화 등이 있다. 힙스터들의 스타일은 꾸미지 않은 듯한 멋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 깎지 않은 수염, 뿔테 안경, 딱 붙는 하의, 늘어난 상의, 빛바랜 체크무늬 셔츠와 같이 소탈한 스타일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어원으로 보나 문화적 코드로 보나, 힙스터는 1960년대 히피(hippie)적 세계관이나 감수성을 반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더 좁은 시대적 맥락으로 보아서, 힙스터는 1980년대의 여피(yuppie, young urban professional)에 대한 반작용의 의의를 갖고 있다. 미드 “섹스 앤 더 시티”나 “가십 걸”에서 묘사된 여피 문화의 핵심이 경제적 풍요에 바탕을 둔 트렌디하고 화려한 도시적 소비라고 한다면, 힙스터의 포인트는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문화적으로 주류와는 다른 가치를 의식적으로 지향한다는 것이다.

스타일의 효과라는 점에서 힙스터와 부분적으로 공통점을 갖는 게 바로 너드(nerd)다. 너드란 우리말로 범생이 쯤에 해당하는 말인데, 너드는 머리는 뛰어나지만 사회성이 아주 떨어지고, 또 대개 외모나 패션이 형편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너드란 말은 너드 룩이라든가 너드 시크(chic) 등과 같은 표현으로 사용된다. 작고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로 대표되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패션 스타일도 하나의 유행 아이템이 되고 있다.

힙스터와 너드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힙스터는 꾸미지 않은 남다른 스타일을 의식적이고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이고, 너드는 단순하게 말해서 신경을 쓰지 않거나 못한 결과로서 촌스러운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너드 스타일도 의식적이고 적극적으로 추구해야만 얻어지는 법이다. 한국에서는, 패션에 신경 쓰지 않는 범생이들의 촌스러운 스타일을 너드라고 해주지는 않는다.

힙스터들의 역설적 의식성이 지나치게 되면, 혹은 그 문화적 새로움이 어느 정도 시효를 다 하게 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힙스터들의 문화적 허위의식이 두드러져 보이는 상황이 출현한다. 힙스터들은 인디음악이나 독립영화를 좋아하지만, 만약에 다른 사람들 다수가 인디음악이나 독립영화를 좋아하게 된다면, 힙스터들은 그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딴 것을 추구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여피든 힙스터든 너드든 간에, 결국 수입되어서 어느 정도 한국적으로 변형된 스타일이며, 또 자본주의적 문화 소비의 유형이라는 점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그 모든 것이 돈과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힙하지 못한 보통 사람들에게 옷장의 정의는 ‘열어 보았자 입을 게 없는 옷들을 보관하는 가구’다. 특히 환절기에는 더욱 그러한 법이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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