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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후쿠시마, 지방 자치의 참 뜻

입력
2016.03.1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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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3월. 나는 도쿄에서 동일본대지진을 경험했다. 도쿄의 피해는 동북지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당시 방사능에 관한 정보가 통제된 상태에서 느낀 극심한 불안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3월12일 1호기, 14일 3호기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15일에는 방사능 물질이 대량 방출되었다. 원전 주변은 말할 것도 없이 방사능은 북동풍을 타고 수도권으로 이동하면서 치명적인 오염을 일으켰다는 것을 훗날 알았다. 당시 TV와 인터넷으로 무너져가는 원전을 보면서도 이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했다. 물론 방사능 정보가 가장 먼저 전달이 돼야 하는 원전 주변의 주민들도 같은 상황이었다.

이 기막힌 상황은 방사능 관련 정보에 대한 정부의 은폐와 미디어들의 자기규제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가 예측 시스템을 통해 방사능 물질의 확산 방향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해 발표를 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미디어들이 이에 따른 탓이다. 권력의 강한 정보 통제가 ‘가만히 있어라’는 지시를 따른 많은 사람들의 방사능 피폭 피해를 키운 것이다.

이번 사고가 인재라고 불리는 이유 중의 하나다. 정보도 없고 통신 수단이 단절된 곳에서 소문과 풍문에 의존하던 원전 근처 주민들은 방사능 물질과 같은 바람 방향으로 피난을 하거나, 조금은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되는 야외에서 밥을 지어 먹던 곳에서 방사능에 노출되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3월 15일부터 후쿠시마에 들어가 방사능 오염지도를 만들어 정보제공에 힘을 쏟았던 NHK ETV특집 취재 팀에 의해 밝혀졌다.

하지만 이렇게 억울한 피해를 당한 후쿠시마가 지금 오히려 새로운 배제와 차별의 아이콘이 되어 있다. 경제적 기반도 없이 전국 각지로 흩어진 이재민들은 새로운 지역사회에서 정착하기 쉽지 않고,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 문제도 심심치 않게 언론에 오르내린다. 또 정부와 도쿄전력의 차등적인 개별보상 때문에 공동체가 분열되었고, 여기저기서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지진 직후부터 일본 정부는 피해 지역 주민보다 국가적 차원에서 수습이 먼저였다. 2020 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3?11극복’과 안전성 연출을 위해 방사능 쓰레기 처분이 채 끝나지도 않은 지역으로 주민들을 복귀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돌아가지 않으면 지원을 끊겠다는 일본 정부의 위협은 큰 효과를 볼 것 같지는 않다.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정부의 압력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피해지역인 도미오카쵸(富岡町)는 지진, 쓰나미, 원전사고의 피해가 심각했고 전 주민이 전국 각지로 피난을 해야 했으므로, 정부의 막대한 예산이 없이는 피해 복구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피난 주민들이 돌아가야 지원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지자체에게는 큰 부담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귀환)않는/(귀환)할 수 없는’ 주민들과 연대를 하며 그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주 후쿠시마를 방문했다. 역사학과 고고학을 연구하는 도미오카쵸 공무원 겸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정부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지역사회의 역사 보존에 열중하고 있었다. 피난 주택에 남겨진 역사적 자료를 수집해서 도미오카 민중의 생활사를 재현하거나 또 철거가 진행 중인 쓰나미 피해현장을 3D영상으로 보존하며, 3.11 이전의 피해지역을 모형으로 재현해 피난주민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비록 돌아 올 수 없는 이재민이 되었지만,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지방 관리의 설명이다.

국가보조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군소 지자체인지라 어쩔 수 없이 정부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정책의 우선순위가 지역과 지역민에 향해 있음을 보고 부러움의 탄식이 새어 나왔다. 풀뿌리 민주주의 부활 30년이 다되어 가면서도 중앙정치의 하수인에 머무르고, 심지어 정치적 계산으로 아이들 무상급식까지 끊는 단체장과 토호세력의 부패가 끊이지 않은 우리의 모습까지 겹쳐지면서 분노마저 끓어오른다.

고영란 일본 니혼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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