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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소년의 꿈

입력
2016.03.1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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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일곱 살이었다. 세상에 나와 고작 일곱 해를 살다가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어둠 속에서 생을 거두었다. 스스로 그리 된 것은 아니니 ‘거두어졌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잠시 기대를 가졌던 수많은 이들도 이제 아이의 이름인 ‘원영이’를 아픈 기억 속으로 묻게 되었다. 꽃으로도 채 틔워내지 못한 어린 영혼 하나가 그렇게 생을 접어야 했다.

얼굴까지 공개된 채 전파와 지면을 타고 흐르는 원영이 소식을 접하면서 안타까움이 참으로 컸다. 부질없지만 아이가 품었을 꿈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저 맑고 환하게 웃는 얼굴 속에 어찌 작은 소망 한둘쯤 없었겠는가. 슬픔으로 꿈을 거둔 원영이를 위해 소리 없이 기도를 해보지만, 무책임하게 상황을 방치하다가 늘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자성의 목소리가 울리는 이 나라 현실 사회의 기성 구성원으로서 도무지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근래 들어 원영이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 소식이 부쩍 자주 들려온다. 봇물처럼 사방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어린 영혼들의 울부짖음에 겨워 달리 시선 둘 데를 찾는 일조차 부끄럽기만 하다. 단지 유행 타듯 쏟아놓는 언론의 호들갑만은 아니라는 생각 속에 문득, 우리는 대체 지금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싶어 헛헛한 한숨마저 내뱉게 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원영이를 비롯한 엇비슷한 처지의 또 다른 영혼들도 이미 잃거나 잃어가고 있다. 위태롭게나마 유지되던 사회안전망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 또한 다시 한 번 잃어버렸다. 슬픈 일이다.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어린 자식들을 향한 손찌검으로 어리석게 분노를 풀어댄 부모들은 포승 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파렴치한 사회적 단죄자가 되었다는 것보다는 순수한 영혼의 일부와 고고해야 할 자존감까지 잃었다는 것을 과연 깨달을 수 있었을까.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얼마 전부터 가정폭력에 치여 세상을 떠도는 가출청소년들과 소박하게나마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대부분 거리를 집 삼아 지내거나 같은 처지의 또래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지내면서 거친 세상 속에 몸을 맡겨버린 아이들이다. 어설픈 동정심으로 물적 도움을 주려 나선 것은 아니고 가정과 사회 모두에게 버림받았지만 아직은 꿈을 잃지 말자는 얘기를 나누는 이들의 자리에 감사하게 낀 일이었다. 매주 가만히 귀를 기울이거나 시선을 건네는 일로 아이들 곁에 몸을 들이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세상에 지지 않으려는 듯 아무데나 가래침을 뱉고 연신 담배를 꼬나 물었지만 그들의 거친 눈동자 뒤로 맑고 여리게 흔들리는 눈빛은 어김없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얻어맞았어요. 쇠파이프랑 칼날에 찍히기도 했고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갓 스물의 청년은 담담하게 자신의 어릴 적 기억들을 털어놓았다. 그의 꿈은 농구선수였다. 주먹질은 물론 욕설과 함께 날아드는 유리병에 시달리다 어깨고 가슴이고 피멍이 그칠 날이 없었다는 한 열일곱 소년은 역시 춥고 시린 거리가 더 마음이 편하다며 집에 들어갈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 소년의 꿈은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이다.

역시나 같은 처지에 있는 10대 다섯 명이 함께 기거하고 있는 월셋방은 월세와 관리비가 밀리면서 전기와 수도, 도시가스까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핸드폰 불빛을 반사시켜 주는 PET병 덕택에 그나마 얼굴을 확인한 채 암흑 속에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가출이 아니라 탈출한 거예요. 지금은 어렵지만 우리 모두 꿈은 다 있으니까 괜찮아질 거예요. ”

자욱해진 담배연기에 가려 누가 한 말인지 기억은 없지만 툭 뱉어 나온 말 한마디의 여운이 짙게 가슴에 깔렸다. 이들의 꿈인 헤어디자이너와 가수, 작가가 될 날이 정녕 멀지 않게 다가오길 바라는 마음 또한 짙어가는 밤이었다.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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