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검찰이 카카오톡을 사찰하겠다면서 SNS상에 일대 충격을 가했을 때, 한 지인이 ‘텔레그램’을 소개했다. 카카오톡도 텔레그램도 몰랐던 때다. 관심을 가지고 보니 그 때 200만명 정도가 텔레그램으로 ‘망명(exodus)’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 무렵 한 군사전문가는 자신도 ‘망명’했는데, 벌써 그곳에 고위 공직자와 군 장성들, 외교관들도 먼저 ‘망명’해 있더라는 것이다. 평소의 식견과 인품으로 보아 그의 말이 과장되었거나 왜곡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최근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테러방지법 통과 전후에 감청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는 텔레그램으로 망명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정부 여당의 인사 중에 망명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친박 핵심' 의원의 어느 보좌관, 테러방지법 입법에 핵심 역할을 했던 의원실 직원, 청와대의 전ㆍ현직 행정관이다. 또 여야 국회의원의 보좌진, 총선 예비후보 캠프 실무자, 기업 홍보담당자 등이 대거 텔레그램에 가입했다. 이런 현상에 새누리당 어느 당직자는 “코미디 같은 일”이라고 꼬집었다지만, 꼬집기 전에 그들 보좌진의 코미디 같은 망명에 이유라도 들어봤어야 했다.

텔레그램으로 망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텔레그램은 비밀대화가 가능하고 대화가 끝나면 그 내용을 삭제할 수도 있고, 서버가 독일에 있어 국내 수사기관의 검열과 압수수색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 핵심은 비밀보장이다. 그래서일까. 국내 순위가 2월 초만 해도 51위에 머물렀던 텔레그램이 테러방지법 덕분에 순위가 급상승했다. 그 법이 국회를 통과되던 3월 2일경부터는 아예 1위로 뛰어올랐다. 여기에 경제성까지 포함시키면 테러방지법의 손익계산은 단순하지 않다.

법의 내용이 제대로 알려진 것은 국회의 필리버스터 덕분이다. ‘국민사찰법’, ‘정적감시법’으로도 혹평받는 이 법은, 어느 변호사의 지적에 따르면, 시민의 위치정보, 정당원 여부, 건강, 성생활, 금융거래, 통신이용 파악이 가능하고, 감시, 미행, 사찰도 가능하며, 인터넷 이용도 파악하게 될 것이란다. 말하자면 테러방지라는 명분으로 시민에게 전방위적 ‘심적 테러’를 가할 수 있다. 이 법은 개인에게 사찰ㆍ감시를 받고 있다는 자의식을 심어주고 지식인의 자기검열을 강요한다. 자유와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문명화와 산업화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언론ㆍ표현ㆍ비판의 자유가 위축되면 연성(軟性) 파시즘 체제와 전체주의 사회화가 급속히 진전될 것이다. 테러방지법은 곳곳에 지뢰를 매설해 두고 대한민국의 행군을 가로막을 것이다.

시민들의 불안을 감안했는지 국정원은 이런 우려에 대해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이나 ‘민간인 사찰’이 불가능하며 국민은 사생활 침해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또 “그간 제기된 국민들의 우려를 깊이 유념하고 법 시행과정에서 입법 취지에 맞추어 제반 규정과 절차를 철저히 엄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테러 의심인물 판단권이 국정원장에게 있고, 직권남용에 대한 제동장치가 어수룩한데도 믿어달라는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더구나 국정원은 대선개입에 간첩조작까지 한 과거사에 철저한 자기고백과 참회가 없었다.

테러방지법이 테러를 방지하여 안전 사회를 약속하고 있는데, 시민들은 왜 보장된 안전을 버리고 망명길에 오르는가. 더구나 ‘친박진영’과 친정부적 인사들까지 왜 그럴까. 테러를 방지하겠다는 그 법이 ‘감시’와 ‘사찰’이라는 테러로부터 시민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못 주어서다. 이는 그 법이 의도한 바는 분명 아니다. 범죄 예방을 위한 CCTV가 거꾸로 시민을 감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철저한 안전장치가 시민들을 안심시킨다. 여기서 테러방지법이 시민을 사찰ㆍ감시로부터 보호하고 인권을 담보하는 안전장치를 제대로 해 놓았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테러방지법에 따른 난민양산, 막아야 한다. 폐지나 개정이 그 답이다. 이번 선거가 그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숙명여대 명예교수ㆍ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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