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출시 앞둔 ISA, 판매 현장 르뽀

신탁형 상품인데 규정 어기고 구체적인 투자 포트폴리오 제시
사은품, 대출 우대 혜택 등으로 가입 권유
모 시중은행이 최근 고객에게 제시하고 있는 신탁형 ISA 추천패키지. 금융위원회는 ‘신탁형 ISA 계약의 체결, 운영 관련 행정지도(안)’에서 고객이 직접 투자 대상을 선택하는 신탁형의 경우 정형화된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공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 지난 9일 서울 중심가의 A은행 지점. 창구에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을 문의하자 투자상담 담당직원이 기자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그는 ‘신탁형 ISA추천 패키지’ 설명서를 내밀었다. 미국ㆍ유럽ㆍ일본ㆍ아시아 펀드에 각각 25%씩 분산 투자하는 ‘피델리티월드 빅4’ 상품과, 주가연계증권(ELS)에 각각 50%씩 투자하는 ‘고수익형’ 상품을 강력 추천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은 있지만 펀드는 3년 수익률이 30%, ELS는 연 4~6%에 달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신탁형은 투자자가 직접 상품을 지정해야 해 부담스럽다’고 하자 “상품 구성은 다 의논해드리니 걱정 말라”고 했다.

#. 같은 날 인근 B은행 창구에서 이 은행 ISA 상품의 장점을 물었다. 직원은 “어차피 금융사마다 수익률은 거기서 거기일 것”이라며 “나중에 주택담보대출 등을 받을 때 우대를 받으려면 주거래은행(B은행)에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사전 가입 신청서를 내밀었다. 고수익 상품의 기대 수익률을 묻자 “아직 상품이 나오지 않아서…”라면서도 “7%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다음주(14일) ISA 출시를 앞두고 본보가 서울 태평로 금융위원회 반경 1㎞내 시중은행과 증권사 수 곳에서 ISA 가입 상담을 받아본 결과, 규정 위반 소지가 다분한 상품 설명을 하거나 사은품이나 대출 우대만을 강조하며 사전 가입을 권유하는 금융사가 적지 않았다.

A은행은 신탁형 ISA를 판매하면서 고객들에게 구체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를 권유한다는 점에서 현행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 금융사가 직접 투자포트폴리오를 짜 고객 성향에 맞게 투자금을 ‘알아서 굴려주는’ 일임형 ISA와 달리, 신탁형은 투자자 지시로만 상품을 채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탁형을 판매하는 금융사는 투자자가 원할 경우에만 편입 대상 상품에 대한 상담과 조언을 해줄 수 있을 뿐, 미리 구체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며 투자를 권유해선 안 된다.

자사 ISA 상품의 특징을 설명하기보다는 무턱대고 사전 가입 신청서부터 내미는 금융사도 적지 않다. B은행 창구 직원은 “금융당국 지침 때문에 출시 이전까지 구체적인 상품 설명이 어렵다. 그 대신 사전가입 이벤트 기간은 끝났지만, 사전 가입 신청서를 쓰면 비누ㆍ샴푸 등으로 구성된 생활용품 선물세트를 주겠다”고 권유했다. C증권사 직원도 “구체적인 상품은 안 나왔지만 연이율 5%의 특판 RP(환매조건부채권)와 손톱깎이 세트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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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혼탁상에는 금융당국의 느린 대처도 한 몫을 하고 있다. C증권사 직원은 “일임형 상품은 금융당국에 보고를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 과정이 끝나지 않아 설명을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시중은행들은 금융위가 ISA 출시일 불과 한달 전인 지난달 14일에야 일임형 판매 허가를 내줘 4월 초에나 일임형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상황. D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이 상품 특성을 물으면 대충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어 난감하다”고 했다.

금융사들은 막판까지 서로의 동태를 살피며 수수료율을 조정하는 ‘눈치 작전’도 펼치고 있다. 이날 KB국민은행은 애초 연 0.1~1.2%에 달했던 운용 수수료를 연 0.1~0.7% 수준으로 낮췄고, 현대증권은 업계 최초로 신탁형 수수료에 대해 무료를 선언했다.

기자가 상담 받은 금융사 대다수는 일임형 ISA대신 신탁형 ISA를 추천했다. 금융사들이 수수료 수익이 높은 일임형 판매를 선호할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전망과 대조적이다. C증권사 직원은 “현재 금융당국이 일임형 상품에 대해 ‘특정 상품 투자 비율 30% 초과 금지’ 등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신탁형의 경우 고위험 투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금융사 말만 믿고 고위험 투자에 나섰다가 금융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시장 상황과 금융상품별로 장단점을 잘 아는 투자자가 아니라면 일임형 투자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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