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흥미로운 현상은 국제정치를 사적 관계로 환원하는 것이다. ‘중국의 전승기념일에 참석했는데 중국은 북한문제에 대해 협조하지 않느냐’라던가 ‘북한에 돈을 퍼주었더니 돌아오는 것은 정반대의 위협’이라던가 ‘일본과의 위안부 타협 이후 일본의 행위에 대한 배신감’ 등이 그 사례가 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국제정치가 냉정한 경쟁과 싸움이라는 인식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알면서도 국제정치에 대한 감정적 접근이 자주 나타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이면에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단일 강대국에 의존했던 경험과 식민지배의 경험, 남북 분단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오래 중국에 의존하다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일본지배에 대한 울분이 누적됐고 분단 이후 지속된 냉전 질서 하에서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유일강대국에 기댄 국제정치의 역사는 국제 사회에서 복잡한 손익관계를 계산하거나 복수 강대국 사이에서 조정역할을 하는 경험을 쌓지 못하게 했다.

수모와 종속 그리고 누적된 회한은 국제정치의 물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으면서도 국제정치의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90년대 말 한국사회가 겪은 외환위기는 이의 대표적 사례다. 종속과 핍박이라는 과거의 유산과 성공적 경제발전이 결합된 비극적 결과였다. 누적된 종속과 수모의 역사 때문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했고 이는 무리해서라도 선진국에 진입하려는 ‘선진국병’을 유발했다. 국제정치경제 현실을 외면하고 누적된 열등감에서 초래된 지나친 자신감이 가져온 비극적 결과였다.

국제정치에 대한 감정적 접근은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전략적 사고를 어렵게 한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국내 대응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드배치 문제에 관한 한국정부의 결정은 단기적이고 즉자적인 것이었다. 북한에 대한 평면적 대응이 보다 더 복잡한 미중관계에서 국제 및 지역 정치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냉정한 국제정치 인식이 선행됐더라면 사드는 대중국 설득을 위한 카드로 사용됐어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사드 배치를 공식화하는 것이 과연 협상용으로 이해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주의라는 명분 하에 벌어지는 극단적 분파주의와 타협을 모르는 투쟁적 국내정치 양상도 냉정한 국제정치 인식을 어렵게 한다. 감정적 국제정치 인식과 국내정치적 싸움이 겹쳐질 때 국가에 이익이 되는 올바른 국제정치적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최근 사드문제의 결정과정도 이러한 국내정치 사정과 무관하지 않게 보인다. 사드에 대한 국내적 합의가 굳건하게 정립되고 이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졌더라면, 국내적으로나 중국의 반대를 피해 갈 수 있다는 기회주의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성급한 처리 역시 국내 정치의 감정적 차원을 회피하려다 나온 결과다.

국제정치의 냉엄함을 이해하지 않고 벌어지는 이전투구의 국내정치는 국내적으로는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에 활용하려는 유혹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한국을 둘러싼 주변국이 국내에 침투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국가의 안전을 위한 초당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국제정치를 국내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상호 비방은 지난 30여년 간 끝이 없이 지속되어왔다. 최근 중국 신문들이 사드배치를 둘러싸고 한국 내에서 이견이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도하는 움직임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분단 사태, 경제적 구조 등 처한 상황을 볼 때 국제정치적 영향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러나 과거 국제정치 역사가 남긴 유산은 오히려 국제정치에 대한 정확한 현실 파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나친 열등감도 문제지만 지나친 자신감도 문제다. 이제 지난 과거의 유산을 극복하고 냉철한 국제정치 인식을 바탕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할 때다.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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