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월이 왔다. 따뜻한 봄날도 좋지만 내가 3월을 기다린 가장 큰 이유는 아들이 어린이집에 입학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제 겨우 두 돌을 바라보는 아이를 벌써 어린이집에 보내느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2년이 길고도 참 길었다. 아이가 8개월 때였다. 그 시기에 아이들은 무엇이든지 잡고 서는데 성격 급한 아들은 잡고 서자마자 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온종일 이리 쿵 저리 쿵 하는 통에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도저히 못 견뎌서 울먹거리며 알아봤던 곳이 집 근처 어린이집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일 때문에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온종일 집에 있으면서 내 몸이 힘들다고 아이를 맡기자니 죄책감이 들어서였다. 위기는 또 찾아왔다. 15개월쯤 되자 아이는 잘 걷는 대신 종일 짜증을 부렸다. 아는 게 많아진 까닭인지 원하는 게 있으면 손에 쥘 때까지 소리 높여 울었다. 언제 틀어질지 모르는 아이의 기분을 맞추느라 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고민 끝에 대기 순번이 제일 빠른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답변은 허망하게도 “저희는 3세반부터 운영해서 내년 3월에 입학이 가능합니다”였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지만 당시에 3월은 오지 않을 먼 미래 같았다.

그 3월이 마침내 찾아온 것이다. 다행히 육아의 난이도는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주식 그래프와 비슷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인내심이 바닥날 즈음이면 아이는 갑자기 눈만 마주쳐도 웃는 순둥이로 변해준다. 덕분에 시간은 그럭저럭 흘러갔다. 아니, 지금 이대로도 좋다 싶은 나날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이제 곧 어린이집에 간다고 생각하니 앉아서 혼자 노는 아들의 동그란 뒤태가 안쓰럽다. 평소 같으면 최대한 숨죽이고 있었을 텐데 괜히 옆에서 기웃거리다 조용히 아들을 불러 세운다. “우리 아들은 좋겠네. 이제 어린이집에 가면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도 계시고 장난감도 아주 많대.” 어린이집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라는 조언을 듣고 해준 말이다. 미간을 찌푸리고 골똘히 듣던 아들은 갑자기 “자동차 친구랑 같이 안 갖고 놀아, 혼자 갖고 놀아”한다. 당황한 나는 장난감은 친구들과 같이 가지고 노는 거라고, 혼자 놀면 재미없다고 띄엄띄엄 일러주었는데 어쩐지 마음이 찝찝했다.

기우이길 바랐건만 아들의 자동차 욕심은 입학설명회 날부터 문제가 되었다. 같은 반 친구가 가지고 노는 자동차를 휙 뺏어 들더니 선생님의 제지에도 아랑곳 않고 가슴팍에 꼭 끼고 있다. 조용히 넘어가나 했더니 얼마 안가 둘이 장난감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들은 장난감을 손에 쥐고도 분했는지 친구 머리를 콩하고 때린다. 놀란 내가 큰소리로 혼내자 앞에 앉은 친구 어머니는 자기 아들은 어딜 가나 뺏긴다며 괜찮다고 해주신다. 미안함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적응기간 동안 울면서 엄마를 찾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보다는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의 행동은 곧 엄마의 행동이자 가르침이니 앞으로 민망할 날이 많겠다는 생각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아이를 믿는 수밖에 없다. 젖 물고 자는 습관을 고칠 때도 젖병을 내다버릴 때도 아들은 늘 엄마의 걱정보다는 빨리 그리고 수월하게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주었다. 한두 번 먹다가 뱉어버리는 통에 이유식을 시작할 때는 식사시간이 전쟁이었는데 어느새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아이로 컸다. 아마도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아이는 조금씩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나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잘 해주리라 믿는다.

아들과 함께 나도 육아를 핑계로 접어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란 참 버겁기만 한데, 세상에 태어난 지 2년도 채 안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아들도 있으니 힘을 내야겠다. 일찌감치 2월 달 달력을 뜯어버렸다. 빳빳한 3월 달 달력이 진심으로 반갑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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