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한은 경기침체 우려에 소극적 행보

충격적 수준 금리인하 필요한 상황

목적ㆍ권한 바로 세울 법개정 필요

중국 경기 둔화, 원자재 값 폭락, 유럽 은행 위기, 미국 금리인상 등 악재가 겹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각국 중앙은행은 경기부양을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미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중앙은행(ECB)뿐 아니라, 일본은행(BOJ), 심지어 중국 인민은행까지 양적완화(QE) 정책을 시행했다. 일본과 유로존 등에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적용됐다. 반면 대내외 경제상황에 대한 한국은행의 대응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획기적 통화정책이 요구된다. 무엇이 획기적 통화정책이고, 그게 어떻게 한국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을까. 한은은 기준금리를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을 정도로 인하해야 한다. 통상 한은은 0.25% 포인트씩 금리를 조정해왔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0.5% 포인트나 0.75% 포인트의 과감한 금리인하에 나서야 경제 전반의 가라앉은 심리를 되살릴 수 있다. 상투적 수준의 금리인하는 효과도 내지 못하면서 ‘실탄’만 소모할 것이다.

Fed는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세 차례의 양적 완화를 시행했다. 그 중 첫 번째만 시장에 충격을 줌으로써 큰 효과를 냈다. 경제에 대한 확신이 제고됐고, 경기 회복세가 나타났다. 반면 제2, 제3의 완화책은 시장의 예상치에 그침으로써 효과를 거의 내지 못했다.

일본도 그랬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 취임 후 충격적 양적 완화책이 발동되자 경제회복 기대감이 높아졌다. 주가가 급등했고 소비심리가 살아났다. 경제심리를 바꾼 건 유동성의 양이나 금리 수준이 아니라, 그런 조치가 시장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충격 요소’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후 충격 요소가 희석되자 일본에서도 추가 양적 완화책은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한은의 파격적 금리인하에 대한 반대론도 만만찮다. 우선 과도한 가계부채가 문제로 꼽힌다. 하지만 한국의 가계부채는 그리 나쁘지 않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GDP 대비 지하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다. 따라서 지하경제를 반영한 실질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훨씬 낮아진다. 한국 가계는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과 달리 금융자산만 따져도 부채보다 많다. 연체율도 매우 낮다. 가계부채의 70%가 유동적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더 낮은 금리는 소비를 증가시킬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가계부채를 개선하더라도 통화정책이 아닌 거시건전성 규제방식을 써야 한다.

미국의 금리인상도 반대론의 근거다. 자본유출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금리인상 변수는 이미 노출됐다. Fed는 인상속도도 빠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올해 더는 추가 금리인상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작지 않다.

미국이 금리를 조금만 올려도 한국에서 자본이 유출될 것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미세한 금리 차익을 겨냥한 게 아니다. 한국의 강력한 경제와 금융시장을 보고 들어오는 것이다. 금리차익이 최대의 투자 목적이라면 한국보다 더 매력적인 나라도 많다.

더욱이 한국은 국제금융시장의 요동에 대비할 4,0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쌓아두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장기 대비 단기외채 비중도 현격히 줄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감안할 때, 자본유출은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에 머물 것이다.

통화정책은 가계부채나 환율 같은 경제의 일부 문제가 아닌, 거시경제 전반을 겨냥한 포괄적 수단이다. 따라서 한은은 성장과 물가라는 큰 그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국이 1978년 ‘험프리 호킨스법’을 시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법은 Fed가 가계부채나 환율 따위 문제가 아닌,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에 정책 초점을 두도록 의무화했다.

한국은 어떤가. 한은법은 ‘한은의 최우선 목적은 국가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데 있다’고 모호하게 돼있다. 이 모호성이 한은의 적극적 행보를 제약해 왔다. 한은법은 한은의 권한과 책무를 보다 분명하게 재정립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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