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이라는 말은 보통 연말에 그 해 전체를 회고하며 쓴다. 2016년 병신년은 아직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이 표현을 써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새해 벽두부터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더욱이 그 사건들은 일시적 충격을 주는 수준을 넘어, 향후 우리에게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칠 것 같은 진정 굵직한 것들이었다. 현 정부의 기업 및 노동 정책이 우리 사회의 지평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라면, 북핵문제를 둘러싼 최근 일련의 대외 정책은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거대한 변화의 파도를 일으킬 지도 모르겠다. 특히, 미국의 사드 한반도 배치 계획과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응은 동아시아에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중국, 북한이 하나로 결집하고, 한국, 일본, 미국이 이에 맞서는 대결 구도를 이미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가 양대 블록으로 갈라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거대한 지정학적 단위가 블록으로 양분되었던 사례를 역사에서 찾는다면, 냉전시대가 우선 떠오른다. 언론에서 최근의 정세를 두고 냉전구조의 부활 또는 신냉전 체제 형성 등의 담론을 사용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일 것이다. 냉전시대 동아시아는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축으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유럽의 경우는 독일을 세로축 삼아 동서로 나뉜 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 각 진영 내부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를 강한 결속력을 가진 블록으로까지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1950년대 중반부터 붉어져 나왔던 중국과 소련 간의 분쟁, 그리고 이후 북한의 독자 노선 선언 등은 견고한 동아시아 공산 블록의 실재를 의심케 한다. 유럽도 독자적 핵개발을 시도했던 프랑스의 드골 정권을 염두에 둔다면 역시 그렇다.

양대 블록이 보다 긴밀히 결집되었던 경우는 제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20세기 초 유럽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2세의 독단적인 대외 정책은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황제는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 유럽에 장기간의 평화를 가져다 주었던 비스마르크의 세력 균형 정책을 버리고 노골적인 대결적 외교 노선을 취했다. 그는 베를린, 발칸반도, 그리고 중동의 바그다드를 독일 제국의 거점으로 연결한다는 원대한 포부 아래, 해군력 증강에 거대한 에너지를 쏟았다. 이러한 독일 정책의 급변은 영국과 프랑스 등 기존 식민 제국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의 굴욕적 패배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던 프랑스는 이 팽창의 제국을 포위, 견제하기 위해 독일 동쪽 국경에 접한 러시아를 동맹국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영국은 그들의 전통적인 적국 프랑스 및 러시아와의 연합까지 불사하며 독일 팽창에 제동을 걸었다. 그 결과는 프랑스-러시아-영국을 하나로 하는 블록의 탄생이었다. 한편, 주변 강대국들의 결집에 놀란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및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손을 잡았다. 유럽이 두 개의 적대적 블록으로 양분된 것이다. 이런 국제정치 양대 블록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블록 내부 또는 그 주변 지역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국지적 군사 도발이나 사건이 자칫 양대 세력이 전면적으로 동원되는 대규모 전쟁으로 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가능성은 1914년 여름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현실이 되었다.

물론 현재 동아시아 정세가 제1차 세계대전처럼 완전한 파국으로 치달을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동아시아와 같은 거대한 지정학적 단위의 양대 블록화는, 20세기의 역사가 보여주듯, 결코 안정적인 국제관계의 지평은 아니다. 게다가 그 블록들 내부의 결속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은 더욱 불안한 요소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그들 관계의 역사 상 가장 돈독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압력 하에 이루어진 우리와 일본의 위안부 문제 타결(?)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현 정부의 최근 일련의 정책들은 20세기 초 독일의 그것만큼 적극적인 형태는 아닌지 몰라도, 각 블록의 결속 강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그 결과 블록의 공고화 및 내부 정치 단속을 외치는 특정 정치 집단이 독주할 수 있는 조건도 마련되어 가는 것 같다.

보통 동시대인들은 당시 벌어지는 사건들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이루게 될지 잘 알지 못한다. 세계 제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인들 역시 그 대륙의 양대 블록화를 가져온 각국의 정책들이 세계사의 방향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만큼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 의미는 대전의 발발을 이미 알고 있는 후대의 학자들이 ‘발굴’해 낸 것이었다. 2016년 첫 두 달에 대한 필자의 느낌이 기우였으면 좋겠다. 훗날의 동아시아 및 한국 역사가들은 필자와 달리 이 시기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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