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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회 미국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이 2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다. 배우 크리스 록이 사회를 맡은 이번 시상식은 시작 전부터 비판을 받았다. 남녀주연상과 조연상 후보에 유색인종이 단 한 명도 포함돼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오래도록 백인 남성 위주로 꾸려졌던 아카데미가 오랜만에 제대로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비판은 비판, 축제는 축제다. 구설이 있다고 하나 아카데미 수상 결과에 전세계 영화팬들의 눈길이 집중된다. 23일 수상작과 수상자를 뽑는 투표를 마감했으니 발표만 기다리면 된다. 여느 때 못지않게 설왕설래 할 올해 시상식의 관전 포인트를 정리했다.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노른자위 상을 포함해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화제의 중심에 있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2연패라는 진기록에 도전한다.
멕시코 감독의 오스카 2연패?

‘레버넌트’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멕시코 출신의 이 감독은 지난해 ‘버드맨’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손에 쥐었다. 꽤 큰 이변이었다. 아카데미는 미국이나 유럽(특히 영국) 출신 감독에게만 관대했다.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작품상 수상이 유력했던 리안 감독은 두 차례 감독상 수상에 그쳤다. 대만 출신이라는 리안의 인종적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따랐다.

이냐리투는 멕시코에서 나고 자라고 영화적 성장을 이룬 감독이다. 변방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린 뒤 세계 영화의 중심에서 포효했다. 라디오 프로듀서로 이력을 시작한 그는 광고를 거쳐 영화계에 입문했다. ‘아모레스 페로스’(2000)로 인상적인 데뷔식을 치렀고, ‘21그램’(2003)과 ‘바벨’(2006) ‘비우티풀’(2010) 등을 만들며 유명 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 됐다. 영화제용 영화를 만든다는 비아냥도 따랐으나 예술영화계의 대가라는 데 이의를 달 관객은 많지 않았다. 아직은 상업영화의 메카라고 할 할리우드에서의 그의 성공은 도드라진다. 만약 그가 ‘레버넌트’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하게 되면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 2연패라는 아카데미 최초의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가장 무서운 경쟁자는 노장들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감독 조지 밀러)와 ‘마션’(감독 리들리 스콧)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사회 비판적인 ‘빅쇼트’(감독 애덤 맥케이)와 ‘스포트라이트’(감독 토머스 매카시)가 다크호스다. 특히 최근 ‘빅쇼트’의 수상 가능성이 갑작스레 부상하고 있다.

경쟁에선 ‘레버넌트’가 한 발 앞서 있다. ‘레버넌트’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의 바로미터라 할 미국감독조합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들어 감독조합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놓친 건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뿐이다. ‘레버넌트’의 작품상 수상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유다. ‘레버넌트’가 작품상을 놓쳐도 이냐리투의 감독상 수상은 거의 확실하다는 전망이 미국의 여러 언론에서 나온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왼쪽)는 3년 연속 촬영감독상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멕시코 촬영감독의 3연패?

촬영감독상 부문에서도 특이한 기록이 세워질 전망이다. ‘레버넌트’의 촬영을 맡은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수상이 유력하다. 루베즈키는 2014년 ‘그래비티’로, 지난해에는 ‘버드맨’으로 촬영감독상을 연달아 받았다. 오래 찍기와 들고 찍기가 아름답고도 인상적인 ‘레버넌트’의 촬영에 대한 호평이 많다. 루베즈키가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같은 부문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울 가능성은 매우 크다.

멕시코 출신인 그는 역시 멕시코 출신인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호흡을 맞춰 ‘위대한 유산’(1998)와 ‘이투마마’(2001)를 만들었고, 은둔의 영상철학자라 불리는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2011)와 ‘투 더 원더’(2012) 등의 촬영을 맡았다.

영화 '룸'의 브리 라슨(왼쪽)은 무명이나 다름 없는 배우이나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다. 콘텐츠게이트 제공
여우주연상은 무명 배우가 유력

여우주연상은 ‘룸’의 브리 라슨이 유력하다. 17세에 한 남자에 납치돼 방에 갇혀 살다가 아이를 낳고 탈출을 꿈꾸게 된 여성을 연기해 갈채를 받고 있다. 골든글로브상(드라마 부문)과 영국 아카데미영화상, 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각각 받았다. 경쟁자에게 오스카가 돌아가면 이변이라 할 수 있다. 케이트 블랜챗(‘캐롤’)과 제니퍼 로렌스(‘조이’)가 라슨을 뒤쫓는 형국인데 힘이 부친다. 블랜챗은 2014년 ‘블루 재스민’으로, 로렌스는 2013년 ‘실버라이닝 실버북’으로 각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수상 경력이 있어 아카데미 회원들의 표를 받기에도 불리하다. 골든글로브상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로렌스가 그나마 라슨을 위협하는 정도다. ‘45년후’의 샬롯 램플링, ‘브루클린’의 시얼샤 로넌도 라슨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으로 보인다. 라슨은 무명에 가깝다. 30편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으나 주연작 중엔 ‘나를 미치게 한 여자’(2015) 정도만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캐롤’에서 블랜쳇과 앙상블을 이룬 루니 마라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면 판도는 달라졌을 수 있다. 마라는 ‘캐롤’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최우수 여자배우상을 받았다. 마라는 블랜챗이 연기한 캐롤의 상대역인 테레즈 역을 맡았다. 주연으로 받아들일 만한 역할이나 조연으로 분류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여우주연상과 달리 여우조연상은 오히려 격전이 예상된다. 마라와 케이트 윈슬릿(‘스티브 잡스’)이 맞서는 양상이다. 윈슬릿은 잡스를 오랫동안 보좌한 비서 역할을 연기해 관객들의 눈길을 잡았다. 남우조연상은 실베스타 스탤론(‘크리드’)에 크리스천 베일(‘빅쇼트’)이 도전하는 모양새다. 스탤론이 자신에게 돈과 명예를 안겨준 록키 역으로 오스카 연기상을 처음으로 품을지, 조연일 때 연기력을 더 인정 받는 베일이 2011년 ‘파이터’ 이후 두번째로 조연상을 수상할지 영화팬들의 눈길을 모은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생애 첫 오스카 수상을 노린다.
그리고… 바로 디캐프리오

결국 올해 시상식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남우주연상 발표다. ‘레버넌트’ 열연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남우주연상을 손에 쥘지 여부에 영화팬들의 시선이 쏠려있다. ‘스티브 잡스’에서 잡스를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 ‘대니쉬 걸’의 에디 레드메인이 디캐프리오에게 도전하는 모양새다.

디캐프리오는 1995년 ‘길버트 그레이프’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아카데미와 첫 인연을 맺었고, 세 차례(‘에비에이터’와 ‘바이 오브 라이즈’,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에비에이터’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는 골든글로브상 남우주연상을 받아 오스카 수상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디캐프리오는 오스카에 네 번 도전해 한 번도 트로피를 가져가지 못했다. 오스카의 저주라는 수식이 디캐프리오를 따라다닐 만하다. ‘레버넌트’로 다섯 번째 수상 후보에 오른 그는 골든글로브상과 영국 아카데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거의 모든 영화상의 트로피를 휩쓸고 있다. 이번이 아니면 영영 오스카를 거머쥐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영화 '스티브 잡스'의 마이클 패스벤더(가운데)는 남우주연상 후보에, 케이트 윈슬릿(오른쪽)은 여우조연상 후보에 각각 올랐다.

패스벤더와 레드메인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패스벤더는 ‘스티브 잡스’에서 잡스를 연기했는데, 애쉬튼 커처의 ‘잡스’(2013) 연기를 보잘것없게 만드는 연기력을 선보인다. 워낙 유명한 실존인물의 빛에 가리기는 했으나 패스벤더의 탄탄한 기본기를 엿볼 수 있다. 지난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주연상을 수상했던 레드메인은 성전환수술을 한 남자라는 독특한 인물을 연기해 짙은 인상이 남기고 있다.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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