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산층 이하 삶의 악화
‘제2의 뉴딜정책’ 외쳐온 셈
한국형 쟁점 바른 진단부터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몰고 온 돌풍이 무섭다. 물론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꺾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하고, 현재로서는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조직도 돈도 없었고 지명도도 낮았던 샌더스가 미국민들을 열광시키고, 난공불락 같았던 힐러리와 숨 막히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과연 ‘샌더스 돌풍’은 어디서 불어오기 시작한 것인가? 이를 이해하는 데, 최근 출간된 책 두 권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먼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2012년에 펴낸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라는 책이다. 이 책은 지난 30년간 미국의 평균 국민소득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은 증가하지 못했으며, 더욱이 건강ㆍ교육ㆍ안전 등을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미국의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생활수준은 한결 더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런 불평등의 심화가 단지 기술발전이나 세계화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 그의 지적의 핵심이다. 이른바 상위 1%가 미국의 정치와 정책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들이 사회에 기여한 대가보다 훨씬 큰 지대(rent)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역진적인 실효세율, 파생금융거래의 불투명성과 금융기관에 대한 반복적 구제(bailout)로 인한 도덕적 해이, 특정 이익집단에 대한 조세감면과 규제완화, CEO가 챙기는 과도한 보상 등을 이런 지대 추구의 예로 들었다.

미국은 더 이상 ‘기회의 땅(land of opportunity)’이 아니며, 이와 같은 정치적ㆍ경제적 상황이 지속되면 사회적 분열이 심화하고, 미국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스티글리츠는 우려했다.

상위 1%가 미국 정치와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2000년대 이후 미국 대법원의 일련의 판결로 더욱 심화했다. 올해 초에 출간된 <검은 돈(Dark Money)>이라는 책은 미국의 금융ㆍ산업 자본가와 기업들이 비영리단체를 통해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선거운동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정치와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코크(Koch) 가문의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샌더스는 효율ㆍ공정ㆍ기회가 담보된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 정치 혁신과 정책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해 온 것이며, 이에 대한 미국 청년들의 화답이 현재의 돌풍을 불러온 셈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적 운동과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이 소수 금권 트러스트 (Money Trust)와 미국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의 폐해를 해소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의 번영과 사회의 진보를 가능하게 한 발판을 마련한 것처럼, 샌더스 돌풍이 제2의 진보적 운동, 제2의 뉴딜정책으로 발전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올해 총선과 내년 대선을 앞둔 국내 정치권에도 샌더스 돌풍이 화두가 될 것 같다. 그러나 피상적 따라 하기는 샌더스 바로 읽기가 아니다. 한국은 미국과 다르며, 샌더스가 주장하는 선거공영제, 국민건강보험 등은 이미 구비되어 있고, CEO 연봉도 미국처럼 높지 않다는 반론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샌더스 바로 읽기’는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장년들은 실직의 불안에 떨고, 어르신들의 노년은 고단한 삶의 연속인 것이 우리 현실 아닌가? 이런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처방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샌더스 바로 읽기’이다.

산적한 경제적ㆍ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하고도 야당이 국민의 마음과 지지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야 ‘샌더스 바로 읽기’가 국민을 위한 정치 경쟁과 국민에게 희망과 열정의 불을 다시 지피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ㆍ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박상인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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