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으로 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강기훈씨. 24년 만인 지난해 5월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됐으나 그가 받은 상처는 그대로다.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2012년 간암 판정을 받아 투병 중이다. 그러나 검찰은 지금까지도 아무런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사진은 2014년 강씨가 서울고법에서 재심 사건 재판을 받을 때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검찰은 처음 수사와 기소를 함에 있어서 충분한 증거수집 및 정확한 사실 인정에 만전을 기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가해자로 기소된 에드워드 리가 무죄로 석방되고 가해자(아더 존 패터슨)를 18년이 지나도록 법정에 세우지 못해 유족에게 큰 고통을 준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달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태원 살인사건’ 결심 공판에서 박철완 부장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말이 눈길을 끄는 대목은 검찰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 유족에게 “죄송하다”고 분명히 사과했다는 점입니다. ‘스폰서 검사’나 ‘성추문 검사’ 등 검사들의 비위 행위가 불거졌을 때가 아니라, 특정 사건 처리와 관련해 검찰이 공개 석상에서 사과의 뜻을 밝히는 걸 본 적은 처음입니다. ‘사과하는 검찰’은 너무나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오버랩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19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발생한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인데, 최근 이모(48)씨가 “나와 내 친구, 선배 등 3명이 진범이었다”고 17년 만에 자백을 했거든요. 과거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이들은 임모(당시 20세)ㆍ최모(당시 19세)ㆍ강모(당시 19세)씨 등 이른바 ‘삼례 3인조’였습니다. 당시 범행현장엔 별다른 물적 증거가 남지 않았었는데, 경찰은 우범자를 상대로 불심검문을 하다 이들 3명을 붙잡아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자백이 있는 만큼, 검찰은 이들을 강도치사 혐의로 구속기소했고 법원에서도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이들은 각각 징역 3~6년의 수감생활을 하고 만기출소했습니다.

문제는 수사 과정에서 검ㆍ경의 폭언과 폭행이 있었다고 임씨 등이 일관되게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너무 무서워서 (검ㆍ경이 원하는 대로) 그냥 자백을 했다”는 것이지요(삼례 3인조 중 2명은 지적장애인이었다고 합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들이 의심스런 사람들을 무작정 붙잡아서 때리고 협박하고 윽박지르고 달래서 결국 거짓 자백을 이끌어내는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들의 재심 청구는 2002년 2월 기각됐으나, 지난해 3월 2차로 다시 청구돼 현재 법원에서 재심 개시 여부를 심리 중입니다.

이런 가운데 “내가 진짜 범인”이라는 고백까지 나와 버렸으니 검찰과 경찰한테는 이것 참 상황이 단단히 꼬여 버렸습니다. 종전 수사가 부실수사였을 가능성이 커졌으니까요. 그러나 이태원 살인사건의 경우처럼 검찰이 재수사에 나서진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재수사 기회는 한참 전에 있었습니다. 삼례 3인조의 형 확정 직후인 1999년 11월, “진범이 누구인지 안다”는 제보를 받은 부산지검이 당시 31세였던 이씨와 조모(당시 32세), 배모(당시 31세, 지난해 사망)씨 등 ‘부산 3인조’한테서 자백을 받았거든요. 부산지검은 2개월 후 관할청인 전주지검으로 사건을 넘겼으나, 전주지검은 ‘혐의 없음’으로 내사 종결했습니다. ▦삼례 3인조가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죄를 자백했고 ▦부산 3인조가 1차 조사 땐 자백했지만 2차 조사에선 번복했으며 ▦진술내용도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였습니다. 최근 이씨의 고백으로 재수사 가능성이 거론되긴 하지만, 검찰의 이러한 입장은 변함없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당초 수사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해 1991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집행부와 당시 학생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게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검찰의 태도입니다. ‘사과할 줄 모르는 검찰’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지점은 사실 과거사 재심 사건들입니다. 역사상 최악의 ‘사법살인’으로 평가받는 1차 인민혁명당 사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52)씨 ‘유서대필 조작 사건’, 군사정권 시절 고문과 가혹 행위 등으로 이뤄진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이나 시국 사건들…. 과거사 재심 사건의 재판장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면서 종종 사과의 뜻을 표명하는 것과는 딴판으로, 검찰은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형 단계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 달라”는 이른바 ‘백지 구형’을 하는 게 고작이죠(유일하게 무죄 구형을 했던 임은정 검사는 검찰 내부에서 징계를 당했습니다). 심지어 강기훈씨 사건에서처럼 유죄 입증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경우도 많고요.

피고인(사실은 피해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억울한 누명을 벗고 싶어합니다. 이런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검찰은 고등법원(재심 사건의 1심은 고법이 맡습니다)의 무죄 선고에도 “대법원 판단을 구해 보는 게 역사적 의미가 있다”면서 기계적 상고를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국가기관의 ‘사법폭력’으로 희생당한 이들의 상처를 조속히 치유해 주는 것보다 대법원 판단이라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인 걸까요. 재심 사건 피고인들은 대부분 고령이라는 점에서 무죄 확정을 못 본 채 세상을 떠나게 될 가능성도 많은데 말입니다.

검찰은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기관입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2005년 취임 당시 ‘과거사 반성’ 원칙을 밝힌 데 이어, 3년 후 ‘사법부 60주년 기념식’을 통해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직접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이후 재심을 통해 잘못된 판결들을 바로잡았고요. ‘국가폭력’을 자행했던 국가정보원이나 경찰, 국방부 등도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 자체 과거사위원회를 꾸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부끄러운 역사를 스스로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독야청청인가 봅니다. 2008년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국법 질서의 확립이나 사회정의 실현에 치우친 나머지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지켜내야 한다는 소임에 좀더 충실하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없지 않았다. 수사결과에 대한 의욕이 지나쳐 수사절차의 적법성과 적정성을 소홀히 한 적도 있다”고 밝힌 적이 있긴 합니다만, 이는 사과라기보단 변명에 가깝습니다.

검찰의 과거사 반성이 있을 뻔한 적이 있습니다. 2013년 4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총장에 취임하게 되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할지 신중히 검토하겠다”면서 “(검찰 차원의) 과거사진상규명회를 꾸리는 방안도 고민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지휘로 정권에 미운 털이 박힌 그가 혼외자 의혹으로 취임 7개월 만에 쫓겨나면서 그냥 없던 일이 돼 버렸습니다.

검찰은 도대체 왜 이렇게 사과에 인색한 걸까요. 사석에서 검사들과 과거사 이야기를 할 경우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입니다. “사법체계의 안정성 차원에서 검찰의 자기 부정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잘못은 짚고 넘어가는 게 좋다. 사과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쪽도 있습니다. 전자가 검찰 조직 내에서 더 힘을 얻는 주장일 텐데, 전문가들은 이를 “기소독점권을 갖고 있는 검찰이 과거의 기소를 부정하면 논리적 모순에 빠져 버린다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검찰의 꼼수라고 비판받는 ‘백지 구형’에 대해 한 검사는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법률가 집단인 검찰은 수사기록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 과거사 사건 피고인의 무죄를 뒷받침하는 기록이 없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 달라’고 하는 게 합당한 자세다.” 예컨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93) 목사의 재심 사건에서 ‘무죄 구형’을 한 임은정 검사에 대해 일반인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법률가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나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전혀 수긍할 수 없는 궤변이고 책임 회피입니다. 사법부 수장이 과거사 반성 발언을 했다고 하여, 재심 사건들에서 종전과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다고 하여, 어느 누구도 ‘사법부가 모순에 빠졌다’고 하지 않습니다. 검찰은 ‘무죄 입증 자료’가 없다는데, 그럼 사법부는 어떤 기록들을 보고 무죄를 선고하는 것일까요. 엄연한 국가기구인 각종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내놓은 조사결과의 신빙성을 왜 검찰은 인정하지 않는 걸까요. 검찰이 걸핏하면 강조하는 ‘국민 신뢰 되찾기’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요.

사과를 억지로 하도록 할 순 없습니다.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사과는 오히려 피해자의 응어리진 가슴에 또 다시 대못을 박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12년 9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1ㆍ2차 인혁당 사건을 혼동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가 호된 비판에 시달렸고, 이후 사과를 했는데도 마지못해 하는 듯한 모습에 “진정성이 전혀 안 느껴진다”는 빈축만 샀습니다. 어쩌면 검찰도 과거의 잘못된 기소들, 특히 권위주의 정권 시절 자행된 수많은 조작 사건들에 대해선 ‘솔직히 지금의 검찰 잘못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검찰이 이제라도 진지하게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 사법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서도 검찰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사법 폭력 때문에 ‘우주보다 무겁다’는 개인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역사가 너무 많다는 점을.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검찰이 되새겨 보고, 제발 좀 실천에 옮기길 바랄 뿐입니다. 사과를 하면 검찰의 권위가 무너진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반대로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용서를 구한 이후에야 진정한 권위가 확립된다는 ‘발상의 전환’을 하라는 얘기입니다.

김정우기자 wookim@hankookilbo.com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