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47. 아빠의 '시체놀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잠을 자지는 않더라도, 이불 속에서 그냥 두 눈 감고 가만히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 이 아빠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렇게 누워 늦잠 한번 자보는 것이다. 허리가 아프도록 잠 잔 지가 언젠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늦잠의 욕구는 오랫동안 채워지지 못했다.

이는 전적으로 아들 때문이다. 아들이 늦게까지 잠을 잔다면 이런 일이 없겠지만, 집에서 제일 일찍 일어난 아들은 엄마 아빠의 ‘시체놀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눈 떠요, 아침이에요 일어나요, 물 주세요, 배 고파요, 자동차 놀이 해요, 책 하나 읽어주세요, 쉬 할래요…. 요구 사항이 끊이지 않는다. 뭘 해도 엄마 아빠랑 같이 해야 한다니, 늦잠 한번 자기 위해서라도 같이 놀 동생 하나 만들어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목욕탕 놀이는 찜질방 놀이로 진화했다. ‘곰이 사는 동굴’이라는 말로 꾀어 데려간 한 찜질방에서 아들과 함께. 아들은 역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잠 들어버렸다.

물론 자고 있는 아빠 위로 기어 올라와 잠을 깨우는, ‘인간 자명종’기능을 하던 때, 그런 아들로부터 적지 않은 기쁨을 누리긴 했으나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 “아들아 아빠 딱 10분만 더 자자.”이제 네 살이 된 30개월짜리 아들에게 읍소하다시피 하지만 가차없이 돌아오는 답은 “눈떠!”,“일어나!”다.(심지어 두 손으로 이 아빠를 팍!! 내려치면서.)

이 정도 되면 같이 놀아주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얼마 전 주말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야근을 하고 새벽 4시 가까운 시간에 잠이 들었는데, 아들은 6시 반부터 일어나 이 아빠를 두들겨 댔다. 20, 30분 같이 놓아줬을까. 이대로 놀다가는 이 아빠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아 아빠가 아야해서 지금 놀 수가 없어~, 아빠 침대 가서 좀 누워 있을께~.”이렇게 둘러댔지만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에라이~ 모르겠다!!!’ 방으로 혼자 들어가버렸다. 이불도 푹 뒤집어 썼다. 혼자서 잠시 노는가 싶던 아들은 방에 누운 아빠를 찾아와 난타한다.(아내는 출근하고 없던 시간이었다.) 가슴팍과 복부를 가격하며 “눈떠!” “일어나!”를 연신 외친다.(잠 못 자게 하는 고문이 바로 이런 것일 테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이쯤 되니 이 아빠한테도 오기가 생겼다. ‘아들놈이 언제까지 이러나 한번 보자!’ 깨워도 계속 누워 있는다면 포기하고 혼자 놀겠지? 바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들이 올라타 내려치고, 귀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눈을 벌리고(?) 고함 쳐도 이 아빠는 꿈쩍도 않고 버텼다. 배를 내려칠 땐 헙! 소리가 튀어나올 뻔했지만, 그것까지도 참아냈다. 반응하지 않으면 아들놈은 아빠 깨우는 걸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다.

아들과의 외식도 이젠 즐겁다. 바닥에 흘리는 음식도 거의 없어 종업원에게 덜 미안하고, 밥 먹는 동안 끝까지 자리도 지킬 정도로 아들은 컸다. 아빠가 없어도 많이 컸다.

하지만 아들은 쉬 포기하지 않았다. 아빠를 깨우다가 혼자 놀다가, 다시 깨우기를 한 10분 동안 반복했을까. 그래도 아빠가 일어나지 앉자 아들은 울기 시작했다. “아빠 일~어~나, 아빠 일~어~나~요~”하며 서럽게 울었다. 자주 못 놀아준 사이 죽음에 대한 개념이 생겼나? 아빠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선 낼 수 없는 곡소리 수준으로 울어댔다. 그래도 이 아빠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들의 울음소리는 더 커져갔고, 윗집, 아랫집, 앞집에서 경찰 신고가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되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였다. 별의 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 아빠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아들은 이렇게 울겠구나, 이 아빠가 죽으면 아들은 어떻게 될까, 아내 혼자 아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아들은 아빠를 언제까지 기억해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이어지자 아들을 그렇게 계속 내버려 두기가 힘들었다. 아들의 눈물이 떨어져서 그랬는지, 이 아빠의 눈가도 젖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앞날 지금 이 순간 더 많이 놀아주자. 체중도 줄이고, 술도 줄이고, 스트레스도 받지 말고, 이젠 대장내시경도 한번 하자. 그래서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아서 지켜주자.’ 그날 아침 이 아빠의 시체놀이는 이 다짐과 함께 끝났다. 다짐이 다짐으로만 끝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야속할 따름이다.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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