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이가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거의 계속 직장 또는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마다 아이들과 떨어지는 일은 일상이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엄마에게 엄청 집착하다가 괜찮아졌다가를 반복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일 때는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 어렵지 않다가 애착이 형성되면서 엄마와 떨어질 때 눈물바람을 보이고, 그 이후에도 또 괜찮아졌다가 나빠졌다가 이런 패턴이다.

이제는 엄마가 출근해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첫째와는 달리 막 다섯 살이 된 둘째는 얼마 전부터 엄마에 대한 애착이 심해졌다. ‘엄마껌딱지’ 시기가 온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엄마에게 매달리고, 엄마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한 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한다. TV를 보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엄마를 옆에 두려고 한다. 첫째 때도 겪어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주말 아침에 딸이 “엄마, 오늘 회사 가지 마요!”라고 소리치면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고 엄마와 아침마다 떨어지는 것이 엄청 스트레스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엄마 오늘 회사 안 가.” 말하면서 딸을 꼭 안아주고 말았다.

매일 아침 출근은 해야 하기에, 아침에 조심하며 살살 일어나 딸이 눈을 뜨기 전에 집에서 몰래 빠져 나오는 시도도 해 봤다. 하지만 엄마가 부스럭거리면서 준비를 시작하면 용하게 눈치채고 깨어나 울음을 터뜨리며 욕실에 쳐들어오거나 마루로 뛰어나오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럴 때는 무조건 10분 이상은 어르고 달래주며 같이 놀아준 다음, TV를 보여주거나 다른 흥미거리에 집중하게 하고 간신히 떨어지며 “엄마, 이제 갈게” 하고 출근을 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패턴이 되었지만, 문득문득 짠하기도 하고, 이렇게 엄마와 떨어지며 스트레스 받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가끔은 안타깝다. 조금 억울한 것은 아이들은 아빠의 출근에 대해서는 무심하다는 것이다. 남편이 비교적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지만, 아무래도 아이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엄마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적어서인지 아빠가 회사에 간다고 하면 매달리는 법이 없다. 같이 일하는 부부인데 뭔가 좀 억울한 기분이다.

주말에 딸이 나에게 요즘 즐기는 역할놀이를 하자고 한다. “내가 엄마고, 엄마가 나야. 알았지?” 딸은 얼굴을 두드리며 화장하는 시늉을 하고, 가방을 든다. “엄마 회사 갔다 올게. 잘 있어.” 제법 흉내 내는 모습이 귀여워 나도 딸을 붙잡고 연기를 해 보았다. “흑흑. 엄마 회사 가지 마요. 엄마 같이 놀아요.” 딸은 단호한 표정으로 “안 돼! 엄마 회사 가야 해” 하며 냉정하게 뿌리치고 나가려고 한다. 내가 더 매달리며 “엄마엄마, 가지 마요. 왜 나가요?” 하니 딸은 “엄마 일해야 돼. 엄마 보고 싶으면 이 장난감 가지고 놀아. 알았지?”라며 나에게 장난감을 안겨주었다.

짧은 역할놀이를 하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 힘든 과정이기는 하지만 딸도 엄마는 회사에 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때론 엄마가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자기 나름대로 적응하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딸과 아침마다 헤어지는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우리 딸도 일을 하기 위해서 아이와 잠시 떨어져 있다가 또 만나는 일상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여성 혼자 오롯이 가정이나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니듯, 일과 육아도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선택지는 아니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전속력으로 달려와 품에 안기는 아이들과 다시 만나는 것은 큰 행복이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붙어 있으면 이런 설렘은 좀 덜하지 않을까? 일하는 엄마로 사는 것도, 일하는 엄마의 아이로 사는 것, 약간의 설렘이 있는 일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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