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욱의 춘풍예찬 (9)목화의 노소동락(老少同樂)

“유명한 극단 목화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템페스트’, 드뎌 서울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줄거리는 몰라도 좋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어도 장면 하나 하나에 어느새 몰두하게 된다.” 어느 네티즌이 지난해 8월 남산한옥마을 국악당에서의 공연을 보고 올린 장문의 리뷰는 그렇게 시작한다. 소박하지만 떨림이 살아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한국화라는 화두 아래 ‘저래도 좋을까, 그러나 과연 오태석!’이라는 찬사를 나라 안팎에서 길어 올린 무대다. 가장 한국적인 호흡을 한 셰익스피어라 해도 좋을 그 무대를 본 어느 네티즌의 문자속이 기특하다. “‘오태석 선생님의 옛말 부리기는 어렸을 때 할배 할매가 쓰던, 철썩철썩 달라붙는 말들을 다 펼쳐놓는다. 새삼 느끼는 것은 연극이란 결국 말의 전달이라는 사실이고, 구어의 힘이다. 말의 맛이 있어야 한다. 마치 힙합에서 라임을 짜고 가사를 쓰는 것이, ‘듣는 이’에게 쏙쏙 박히게 써야 하는 것처럼.”

상찬의 속내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 볼 요량으로, 곧 폐막을 앞둔 ‘템페스트’의 감흥을 되새기며 그 무대의 최고령, 최연소 배우를 초대했다, 알론조와 신라 자비왕을 함께 연기하는 정진각(64), 광대 가운데 하나인 박보배(24). 그들에게서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 아니 오태석 연극의 미래를 본다. 극 중에서 두 사람은 거의 모든 장면에 걸쳐 역할을 바꿔가며 무대 어디서든 같이 있다고 보면 된다.

목화레퍼토리컴퍼니의 최고참과 막내로서 이들은 확신과 자부에 차 있었다. 양주은 인턴 기자 촬영

한 세대는 족히 넘기는 두 사람은 우선 전혀 격의가 없어 보인다. 묘한 동지 의식이다. 분장실에서 실없는 소리는 먼저 하는 것은 김씨의 이를테면 무대관이다. 그는 그것을 스스로 즐긴다. “배우 아버지보다 내가 나이 많아, 후배들이 힘들어 할 수도.있거든요. 무대 바깥 일은 다 떠나, 배우 대 배우로 만나야 작품이 나오는 법이죠.” 그의 ‘작전’이 성공했음일까, 박보배는 이렇게 받았다’ “선생님한테 못할 말은 없어요. 너무 편하게 해 주시니.”

두 사람의 공통축은 목화다. 김진각은 동랑레퍼토리의 막내로 1973년 오태석씨를 만나 연기를 시작하더니 2년 뒤 이른바 오사단의 멤버의 일원으로 있다, 1984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 창단 멤버로 신분을 바꿨다. 한편 박보배는 2015년 4월 서울예대 졸업 후 즉시 입단했다..1학년 신분으로 오씨의 3학년 전공 강의를 수강, 목화에의 꿈을 키워왔다는 것. ‘한강은 흐른다’에서 희숙(중국 동포),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에서 백장미(창녀), ‘백마강 달밤에’에서 한산댁(마을 아낙) 등으로 변신해 왔다. 그 중 가장 자신과 잘 맞는 배역이라면? “나와 맞는다는 생각, 아니 아예 그런 개념이 없다. 각각 너무 다른 배역을 하다 보면 공부가 많이 된다는 생각뿐이다”

졸업 직후 부모에게 알린 후 입단을 위해 오태석씨를 찾아간 박보배는 맨 처음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배우고 싶다”며 운을 뗐다. 그렇게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 속으로 미끄러져 갔다. 이른바 오 사단의 단원으로 만들어져 가는 생활에는 경계가 없었다. 무대를 위해 투여해야 하는 엄청난 연습량은 기본이었다.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

유달리 기발한 소품이 많이 등장한 연극 ‘한강은 흐른다’의 경우, 신입 단원이었던 그에게는 온갖 소품들, 이를테면 쥐, 벽돌, 낙타, 고슴도치 등을 만드는 일이 주어졌다. 일일이 오리고, 자르고, 붙이고, 이어가며 소품을 만들었다. 딴 데는 다 있는 소품과 의상 담당이 이 극단에는 없어서다.(목화의 남자 단원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새끼를 꼬아 만들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바느질도 못 하던 단원이 어느덧 재단까지 하게 되죠.” 국립극장의 소품 담당까지 너끈히 맡는다.

다리미가 낯설기만 했던 여성 단원은 의상 팀에 소속돼 하루 종일 기꺼이 다림질만 한다. 소품 담당에서 연기까지, 배우는 목화에서 연극을 위한 전인(全人)의 다른 이름이다. 저 같은 형태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자급 자족의 연극 공동체라는 이상을 구현한 빵과인형 극단과 맞닿을까? “초창기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 없죠.” ‘아프리카’에서 비행기 승객을 대신하는 인형을 직접 제작한 정진각의 기억이다. “특수 분장의 경우, 바깥 손을 더러 빌리기도 하지만”

한때 ‘사단’이란 말까지 들었을 정도로 이들의 결속력은 타인이 넘볼 바가 못 되었다. 연출이 너무 센(?) 목화에서 배우란 현실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정씨에게 물었다. “기본 훈련이 덜 된 상태에서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오 선생이 제시하는 바를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 것이 되거든요.” 배우들의 많은 연습량을 전제로 하는 이른바 ‘오태석 메소드’는 그래서 몸으로 전승되는 미학일지 모른다. 그 형식은 언외별전(言外別傳)일 것이다. “배우는 겸손해야 돼.” 선문답 같았을 연습실의 시간을 견뎌낸 대선배가 일축했다.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단, 연출의 요구에 동의하는 한!”

그 같은 답을 얻기까지 그는 나름 인고의 시간을 이겨냈다. 이를테면 이런 것. 1984년 문예회관에서 창단 작품으로 공연된 오태석 작-연출의 ‘아프리카’를 보자. 당시 주인공인 배관공으로 분했던 정씨에게 낯선 땅에 던져진 자의 불안을 4분 동안의 끊임 표현하라는 오씨의 주문이 떨어졌다. 별의별 용을 쓰며 역을 소화하느라 그는 치질까지 걸렸다. “배우로서의 당연한 몫이죠, 뭐”

“나는, 오 선생은 연극적으로 항상 옳다고 봐 왔어요.” 잡지 일, 뮤지컬 등으로 두 번, 목화를 떠난 적 있었던 정진각의 말에는 미학적 결단마저 느껴진다. 아니, 그 이상이다. “떠나 있으면 나는 목화 색깔의 인간이란 걸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죠. 진정한 한국어 구어체로 연극하는 집단은 여기뿐이라는 사실을요,” 때로는 진저리칠 정도로 싫지만 결국은 회귀하게 되는 곳, 목화.

막내는 어떨까? “목화에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영상물로만 봐 오던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것 부터가.” 자신처럼 나이 어린 사람에게 선뜻 기회를 제공하는 목화의 개방성이 새삼 고마운 모양이다. “(새 작품 할 때마다 배우를 뽑는)건당 오디션이 당연시 된 현실에서, 잘 익은 앙상블을 위한 극단이 이렇게 존재하잖아요!”

장병욱 편집 위원 a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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