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민주주의가 국민에 의한 정치체제라면, 권력을 결정하는 국민의 선택이 바로 선거다. 이 선택에서 주요 기준은 이익과 가치, 인물과 정책이다. 서로 분리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익과 가치, 인물과 정책은 사실 긴밀히 연관돼 있다. 아무리 옳은 가치라 하더라도 이익과 결합돼 있을 경우에 유권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며, 훌륭한 정책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정책을 추진할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담보될 때에 유권자들은 투표장으로 향한다.

이렇듯 이익 대 가치, 인물 대 정책을 조화시키는 게 정당의 역할이다. 좋은 정당이란 국민적 가치와 유권자 이익을 적절히 결합한 정책을 제안하고, 이 정책을 단순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리더가 핵심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주는 정당이다. 통계전문가 네이트 실버의 방식으로 말하면, 숱한 ‘소음’을 유포하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신호’를 전달하는 게 유능한 정당의 과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이 기다리는 신호는 뭘까. 저성장과 불평등 해법이 그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성장에 대해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고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성장에 적응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이야기다. 성장 중독은 압축 산업화가 가져온 병폐의 하나다. 그 과실을 어떻게 적절히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 없이 덩치만 일방적으로 키우려는 성장은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사회갈등으로 인해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저성장도 저성장 나름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중견국가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3% 정도의 성장률이 요구된다. 문제는 성장의 환경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중국 경제의 위협, 고령사회로의 진전에 따른 인구 절벽과 그 결과인 소비 절벽의 가시화, 무엇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뉴 노멀’의 일상화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환경을 변화시켰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 후반에 머물러 있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은 올해부터 2020년까지 잠재성장률이 2%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분명한 것은, 낙수 효과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성장 없이 국민 다수가 원하는 분배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선 새로운 수출 전략의 모색, 신성장동력의 확충, 내수시장의 활성화 등 저성장에 적극 대응하는 정책 패키지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저성장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불평등의 구조화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경우 전체 자산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상속ㆍ증여 비중이 1980년대에 27%였지만 2000년대에는 42%로 크게 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근 수저계급론으로 명명된 ‘세습사회’ 경향이 점점 더 강화하는 상태에서 수출 대기업과 내수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소수 상층과 다수 하층 간의 다양한 격차들이 더욱 고착화되는 ‘양극사회’ 경향이 중첩돼 왔다. 세습사회와 양극사회의 결합이야말로 한국적 불평등의 현주소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ㆍ문화적 불평등의 구조적 조건을 이룬다는 점이다. 교육ㆍ소비ㆍ문화생활에서 계층 간에 커지는 크고 작은 격차들은 공동체를 분절화시키고 결국 사회통합을 해체할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직을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고용정책, 증가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재정정책, 훼손된 공동체를 복원할 문화정책의 일대 개혁 없이 불평등 해소는 요원한 일이다.

저성장과 불평등은 국가ㆍ시장ㆍ시민사회 중 어느 하나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총선은 새로운 국회를 구성하는 선거다. 20대 총선이 두 달 남아 있는 현재, 새누리당은 ‘경제 활성화’를, 더불어민주당은 ‘경제 민주화’를, 국민의당은 ‘공정 성장’을 주요 정책으로 내놓고 있다. 성장이 보수만의 담론도 아니고 분배가 진보만의 담론도 아니다. 저성장과 불평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을지 국민 모두를 위한 정당이라면 당연히 응답해야 한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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