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미 정상과 전화로 북핵 문제를 협의한 지 이틀 만에 북한이 보란 듯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오히려 한국을 향해서 냉정한 대응을 주문한 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ㆍTHAAD) 문제를 신중히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7일 중국은 충격에 빠졌다. 무엇보다 시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가진 지 48시간도 안돼 북한이 미사일을 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그 동안 각국의 냉정을 촉구해 온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았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 통화 통화에서 “한반도에는 핵이 있어선 안 되고, 한반도에선 전쟁이 일어나서도 안 된다”며 “북핵 문제 관련국들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도 전화 통화를 갖고 “현재 한반도 정세는 복잡하고 민감하다”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도 5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통화를 갖고 현 정세 아래에선 각방이 긴장을 격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행동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반도 긴장을 격화시킬 수 있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만류하기 위해 러시아와 함께 북한을 압박한 것이었다. 중국 입장에선 한국과 북한, 미국, 러시아를 상대로 사실상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전방위 외교를 편 셈이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이러한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곧장 미사일을 발사했다. 중국은 이제 국제 사회에서 설 자리가 좁아지게 됐다. 사실 북한이 중국을 당혹스럽게 만든 건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다. 중국은 지난달 6일 북한의 4차 핵 실험과 관련, 사전에 귀띔을 전혀 받지 못했다. 서열 5위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지난해 10월 방북한 이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던 중국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북한은 또 최근 6자회담 중국측 수석 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북한 날에 맞춰 미사일 발사를 공식 예고했다. 미사일 발사가 임박한 줄도 모르고 우 대표를 파견한 중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중국의 권고를 듣지 않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은 말을 듣지 않는 북한에 화가 치민 상태다. 더구나 북한은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설) 연휴에 맞춰 또 다시 ‘사고’를 쳤다. 북한은 2013년2월 3차 핵 실험도 중국의 춘제 연휴에 감행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짜증과 분노의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북한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에 변화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나온다.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최근 사설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반드시 새로운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게 중국인 대다수의 생각이라고 믿는다”며 중국 정부를 압박했다. 네티즌 여론도 북한에 대한 강경론 일색이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버리고 한미일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 요구에 적극 동참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날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중국 외교부 반응은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여전히 각국의 냉정한 대응을 주문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일 “중국은 유관 각방이 냉정을 유지한 채 신중하게 행동하고 한반도 정세의 긴장을 더욱 격화시키는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는 2012년12월 북한 미사일 발사 시 나온 반응과 똑 같은 수준이다.

관영 신화통신도 이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거나 난리가 생기는 건 백해무익’이란 논평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지금 가장 긴박한 건 유관 각방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란 대국(大局)에서 출발, 냉정하게 대응함으로써 상황이 악화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오히려 이날 우리나라를 향해 경고장을 날렸다. 화 대변인은 이날 한국과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ㆍTHAAD) 배치 협의를 시작한 것과 관련, “우리는 유관 국가가 신중하게 이 문제를 처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 나라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할 때는 다른 나라의 안전과 이익을 침해해선 안 된다”며 “(사드는) 한반도 정세를 자극해 긴장을 더 높일 뿐 아니라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고 각방이 지금의 정세를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도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사드가 중국의 이익을 해친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는 북핵과 미사일을 빌미로 미국과 일본이 중국 포위망을 더 죄어 올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에 사드가 배치되고 일본이 무장을 가속화하는 게 중국에겐 더 최악인 셈이다.

이처럼 사실상 중국이 북한을 감싸고 한국과 관계는 불편해지면서 결국 한미일과 북중러의 삼각 대립 구도가 재연되는 것 아니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한 소식통은 “한미일과 북중러의 구도가 굳어지면 북핵 문제는 더 풀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북한은 이 틈을 활용, 도발을 더 강화할 수도 있다”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외교관은 “중국이 각국의 냉정을 주문하는 것이 오히려 북한의 오판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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