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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아리랑국제방송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방석호 아리랑TV 사장에 대해 해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요한 자리에 인사를 할 땐 뭐니뭐니해도 정실인사를 해야 돼. 똑똑한 놈 뽑아 놓으면 자기가 잘나서 됐다고 생각하지 고마운 줄 몰라요. 하지만 능력은 좀 못해도 말 잘 듣는 놈한테 좋은 자리를 주면 ‘내가 부족한데도 이렇게 뽑아주셨구나’ 하고 확실히 충성한다고.”

한 7년쯤 전인가. 저녁 자리에서 한 경제관료에게 들은 얘기다.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그 내용만은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그는 술 기운에 자신이 터득한 인생의 지혜(?)를 말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말과 정반대가 돼야 한다. 주변에서 실력 있는 사람이 인정 받는 모습을 봐야 직원들이 자신도 노력해서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동기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능력보다 차기 권력에 대한 충성심이 더 중요하다는 법칙이 드러난 조직에선 구성원들이 실력보다는 줄서기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줄 잘 선 사람은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내쳐지는 조직에서는 눈치 안 보고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은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MB정권 시절 금융권을 출입하면서 이런 모습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른바 ‘4대 천황’이라 불리는 실세들이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된 금융지주사들의 실적이 쭉쭉 빠지는 것을 목격했다. CEO가 정권에 의해 임명되면 임원 및 차기 임원 후보도 정권 눈치를 본다. 모시는 임원의 운명에 인사가 달려 있는 직원들 역시 몸은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머리는 메신저로 도는 온갖 소문에 쏠려 있다. 그런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신명 나게 일하고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면 그야말로 기적일 것이다.

MB정부 시절 ‘CEO 정실인사’를 화끈하게 벌였던 곳이 또 있다. 공영방송이다. ‘방송 장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공영방송 사장의 친정부 인사 임명 관행은 현 정부에서도 계속됐다. 임명된 사람들의 연령대가 디지털 시대에도 방송은 TV로만 보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 같은 나이로 올라갔다는 것 정도가 차이점일 것이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프라임타임 뉴스에선 정부 비판적인 보도는 아예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이고 정치 사회 분야보다 날씨가 훨씬 중요하게 다뤄진다. 신뢰도와 시청률은 날로 추락한다. 공정보도를 주장하는 기자나 PD는 증거도 없이 부당 해고를 하고 소송에서 질 줄 알면서도 번번이 항소해 법무비용을 낭비한다. 최근 녹취록을 통해 밝혀진 MBC 경영진의 이 같은 행태는 실력보다 충성심을 우선시하는 인사가 회사를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쓰면서 가족끼리 호화출장을 다녀와 물의를 빚은 방석호 아리랑TV 사장 역시 정부 마음대로 사장을 임명한 결과의 전형이다.

문제는 세금까지 지원하는 공영방송의 경영진을 전문성이나 도덕성은 무시하고 정권 입맛에 따라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지배구조다. 영국이나 일본, 독일의 공영방송이 지역이나 시민사회단체, 직능대표 등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독립성과 공영성을 추구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지난 KBS 사장 임명 당시 3분의 2 찬성을 필요로 하는 ‘특별다수제’를 비롯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여러 가지 제안이 나왔지만 좌절됐다.

앞서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당시에도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대신 마음에 맞는 인사를 경영진에 앉히는 데 급급했다. 어떤 세력이든 집권하면 공신에게 자리를 나눠주고 방송을 친정부방송으로 만들 생각부터 하는 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과 공공성 회복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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