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이었는데 때로 치자면 아마 이맘때쯤인 것 같다.

유리문을 옆으로 드르륵 밀고 들어가는 선술집이었다. ‘선희네집’이라고 빨간 페인트로 써놓은 유리창 밖으로 후줄근한 서설이 내리고 있었다. 연탄난로에는 노가리 몇 마리 구워지고 있었다. 별 목적도 없이 모인 네댓 명의 친구들이 양은 종재기에 막걸리를 마셨다. 술은 시나브로 거나해지고 심심풀이 화제는 한 바퀴 돌아 고향 얘긴가를 하다가 갑자기 정병근 시인이 목소리를 한 톤 높였다.

“야 너희들 쌀 바구미 알어? 이놈들이 말이지 쌀 속에 바글바글 몰려 사는데 이것을 한 주먹 골라서 바닥에 패대기 치면 그 많은 놈들이 흩어지는데 말이지 한 놈도 똑같은 길로 가는 놈이 없어요. 다 달러 다! 임마들아 알어!”

거, 사람 참 묘하게 냉소적이네 생각하면서도 우리네 삶의 한 상징을 꼬집어 말한 것 같아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 말이다. 우리는 늘 밥 이라는 구심력과 고향이라는 원심력의 말뚝에 매어진 팽팽한 줄 위에서 생활하는 것 아닌가 해서 말이다.

오늘부터 설 연휴다. 그 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리에서 일어나 걸상을 밀어놓고 그리움과 고마움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풀어놓는 때다. 그곳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로해주고 오는 것 같지만 사실 더 많은 것을 위로 받고 보람을 얻어가지고 오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경이 되었겠지만 어린 날의 설은 이랬다.

설로 접어드는 읍내 오일장이 오면 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는 곡식을 마무리해둔 광으로 들어가 참깨를 한 말 꺼내고 콩이나 팥 같은 것도 되는대로 꺼내서 마루에 얹어놓는다. 그러면 두 살 위인 효숙이 누나와 나는 괜히 마당을 기웃거리며 빗자루도 들어보고 까만 고무신발도 뒤집어보면서 아버지 눈치를 슬슬 살핀다. 내가 열 살 때 환갑이신 늙은 아버지는 원래 묵묵하고 잔 말씀이 없는 농부인 것을 알아 누나와 나는 끝내 아무 말도 못하고 등짐을 지고 동구 밖으로 나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벌써 신작로에는 많은 아버지들이 잡곡 등짐을 메고 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설날 아침. 머리는 빡빡이고 얼굴은 새까만데 버짐 꽃이 하얗게 핀 어린애가 까만 줄무늬가 세 줄 박힌 샛노란 츄리닝을 입고 헤죽헤죽 웃는다. 약과 몇 개를 호주머니에 넣고 옥춘사탕을 빨며 동선마당으로 슬슬 나가면 벌써 아이들 몇이 둥그렇게 모여 ‘동네 제기 바람 났네!’하며 제기차기를 하고 있다. 서로의 설빔을 슬쩍 보면서…

삼삼오오 지나가는 어른들을 보면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고향에 들른 이들이 “니가 용택이 동생이냐?”하면 예!예!하며 무슨 칭찬을 들은 것처럼 뿌듯했다. 해가 중천에 뜨고 어른들 세배가 끝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마을 꼭대기 정수네 집부터 맨 아래 일영이네 집까지 세배를 다녔다. 그렇게 이 집 저 집 다니며 감주며 수정과 집에 없는 쇠고기 산적도 얻어먹고 동네 차례상을 다 받고 나면 갯둑너머 짚가리 아지트로 모여서 아이들만의 설 잔치를 벌였다. 각자 주머니의 과자를 꺼내고 집에서 산적이며 전을 가져와 상이 차려지면 짝을 져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일등은 쉬고 이등은 성수네 가게로 막걸리를 받으러 가고 삼등은 여자애들을 부르러 갔다. 혼자 하긴 겁이 나고 안 하자니 하고 싶고 이래서 모두 돌려가며 막걸리를 마시고 담배도 한 대 피워보고 이러면서 같은 추억을 나눠가졌다.

이렇게 한 살씩 나이를 더 먹어가며 더러는 중학교대신 먼저 간 형들을 따라 공장으로 가고 한 둘은 전학을 가고 뿔뿔이 흩어져 자신만의 발자국을 찍으며 먼 길을 왔다.

세월이 좋다고, 물질이 풍요롭다고 말할수록 그것이 채워진 자리만큼 빠져나가는 것이 있다. 앞으로 나가는 것이 뒤돌아보지 말라는 뜻이라면 나는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세월이 우리에게 뒤돌아보면 저 소돔의 여인처럼 소금기둥이 되리라고 협박을 한다 하더라도 추억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이며 방향의 키다.

지금 길 위에 있는 이들은 걸어온 발자국을 되짚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곳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과거이며 현재인 고향. 따듯한 떡국 한 그릇으로 몸을 덥히고 마음엔 여전히 청년으로 남아있는 동네 어른에게 “저 아시겠어요. 용택이 동생이요!” 하며 넙죽 절 한번 하고 싶어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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