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30년, 후쿠시마 5년 현장리포트]

2부 후쿠시마, 끝나지 않은 비극 <1>귀향을 강요당하다
일본정부 4월 피난해제, 귀향 독려
주민들은 방사능공포 때문에 귀향 꺼려
히로시마 원폭피해입고 후쿠시마 원전피해도 입어
“평생 두 번이나 핵으로 피해 입은 기구한 운명”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고향 오다카마치를 떠나 5년째 미나미소마 가설주택단지에 살고 있는 마쓰모토 사치에씨가 임시학교 앞에서 아홉살 아들의 하교를 기다리고 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해 프리랜서 기자pe.deletree@gmail.com

“일본 정부는 올 4월 우리더러 고향에 돌아와 살라고 하겠답니다. 그런데 보세요. 집안은 방사선 수치가 낮지만 지붕에서 빗물이 모여 떨어지는 지점은 훨씬 높아요. 이런 곳에서 9살 아들을 데리고 어떻게 삽니까?”

마쓰모토 사치에(42)씨는 집 주춧돌 모서리에 방사선 계측기를 들이 대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가족과 살던 오다카마치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도 채 떨어지지 않은 마을로, 사고 이후 현재까지 피난의무지역에 속해 있다. 그는 “고향에서의 삶이 그립지만 돌아올 수는 없다. 수도가 공급되는 대로 집을 고쳐 원전 노동자들의 기숙사로 내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4월 오다카마치에 대한 피난 명령을 해제할 예정이지만 설문조사결과 약 6%(피난민 1만 2,000여명 중 800명)만이 돌아올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마쓰모토씨는 “이마저 대부분 고령자들이다. 유치원은 폐쇄됐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문을 연다지만 얼마나 애들이 돌아오겠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지난해 피난이 해제된 가와우치무라의 경우 귀향자는 11%에 불과했고, 나라하마치 역시 10%에 그쳤다.

체르노빌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30㎞ 반경 내에는 원칙적으로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러나 20㎞를 제한구역으로 정한 후쿠시마는 2014년부터 순차적으로 피난 명령을 해제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는 약 16만명의 피난민을 낳았고 현재도 10만여명은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사고 뒤 6주기가 되는 내년 3월까지 방사능 오염이 심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모두 귀향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강제 대피자 7만 9,200명 가운데 5만 4,800명이 그 대상이 되는데, 강제피난이 해제되면 정부 지원금도 사라진다. 모든 것을 잃은 피난민들로선 정부 지원금마저 끊어질 경우 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사실상 귀향을 강요당하는 셈이다. 사정이 낫다는 후쿠시마 서쪽은 땅값이 크게 올라, 웬만한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때문에 주민들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이 안전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사치에 마쓰모토씨처럼 후쿠시마 피난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오다카마치 가설주택단지.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해 프리랜서 기자pe.deletree@gmail.com
가설주택에서의 5년

마쓰모토씨는 미나미소마에 있는 약45㎡ 크기의 가설주택에서 노모와 남편, 아들 둘과 함께 살고 있다. 집 안에는 기본 가재도구와 옷가지만으로도 발 디딜 틈이 없다. 막내 아들은 매일 원전 피해지역의 학교 네 곳을 합친 임시학교까지 30분씩 차를 타고 등하교한다. 그는 “막 피난왔을 때는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 전염성이 없다는 건 알게 됐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가족들은 이렇게 5년을 버텼다. 그 동안 이웃의 죽음도 숱하게 목격했다. “저 집 사람은 42살이었는데 2011년 재난으로 부모가 다 저 세상 갔거든요. 혼자 못 살 것 같다고 기차 선로에 뛰어들었어요. 또 다른 집에는 젊은 애가 고독사했구요.” 일본 내각부 자료에 따르면 쓰나미 피해가 컸던 후쿠시마와 이와테, 미야기현에서 지난 5년 동안 154명이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마쓰모토씨도 지난해 첫째 아들을 잃을 뻔 했다고 했다. 아들은 방사능 오염이 심각했던 원전 인근 지역에서 6개월 동안 제염 노동자로 일했는데 몸에서 세슘이 다량 발견됐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기도했다는 것. 그는 “이제 후쿠시마에는 원전 관련 일 외에는 일자리가 없다. 원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는데 먹고 살려면 여전히 원전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고 했다.

생업을 잃고, 가족의 역사를 잃다

후쿠시마는 농업 임업 수산업 등 1차 산업에 종사자들이 많아 전통적 사고방식이 강한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사고 이후 더 이상 가업을 잇지 못하거나 조상 무덤을 가까이서 보살필 수 없는 데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오카 미노루 노인은 히로시마 원폭피해자이면서 후쿠시마 원전피해자다. 후쿠시마 참사로 60년 생업인 목축업을 잃어야 했다. 첫 인터뷰 3개월 뒤 다시 찾아갔을 때 그는 치매 때문에 취재진을 알아보지 못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해 프리랜서 기자pe.deletree@gmail.com

8대째 후쿠시마에 살고 있다는 오카 미노루(89)씨는 히로시마 원폭피해자인 동시에 후쿠시마 원전피해자다. 한 평생 핵으로 인한 상처를 두 번이나 입는 기구한 운명이다. 그는 전쟁터에서 정보병으로 복무하다 피폭을 당해 일생을 후유증을 안고 살면서 오로지 논밭과 목장에만 매달렸다. 다행히 쓰나미가 100m밖에서 멈춰 물리적 피해는 거의 없었고, 원전에서 28㎞ 떨어진 곳이라 강제 피난대상도 아니었지만 60년 생업을 잃고 말았다.

커다란 굉음을 냈던 원폭과 달리, 방사능은 소리도 냄새도 없이 퍼졌다. 사고 직전인 2011년까지 여러 번 전국 최고 품질상을 받았던 그의 우유는 후쿠시마산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했다. 육우로 기르던 소도 다 처분해야 했다. 방사능 오염에 취약한 버섯은 물론, 딸기도 더 이상 생산할 수 없었다. 그는 “사고 전까지 원폭과 원전을 연결시켜 생각해보지 못했다. 후쿠시마는 척박한 땅이었고 그래서 원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정부 정책을 반대할 줄 모르도록 자랐다”고 나직하게 말했다.

취재진에게 “후쿠시마에 잘 곳이 없으면 언제든 오라”며 친절을 베풀던 오카씨 부부는 3개월 뒤 다시 찾아갔을 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렵게 전화로 연결된 딸 오카 요코 (59)씨는 “갑자기 치매가 심해지셨다. 나 역시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며 참던 울음을 터트렸다.

후쿠시마=김혜경ㆍ 다무라 히사노리 프리랜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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