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30년, 후쿠시마 5년 현장리포트]

2부 후쿠시마, 끝나지 않은 비극 <1> 귀향을 강요당하다
후쿠시마 최대도시 이와키 피해자들은 지금도 가설주택거주
유령도시된 도미오카마치는 야생동물만
후쿠시마 원전에선 7,000명 근로자들이 폐로작업중

작년에만 세 번 취재차 후쿠시마를 찾았지만, 여정의 시작은 늘 이와키였다. 후쿠시마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해안가 가까운 탓에 센다이 다음으로 쓰나미 피해가 컸던 곳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원전에서 50㎞ 가량 떨어진데다 사고 뒤 남동풍이 분 덕에 방사능 오염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런 이유로 약 2만4,000여명의 피난민이 이 도시에 수용됐다. 지역시민단체는 “핫스팟(방사선 수치가 높은 장소)이 곳곳에 존재한다”고 했지만 취재진이 측정했을 때는 0.1μsv/h를 조금 웃도는 정도로, 서울 평균치과 비슷했다.

이와키의 첫 인상은 일본의 평범한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도보로 20분만 가면 낡은 가설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쓰나미가 삼켜버린 동네는 재건을 위한 기초작업만을 겨우 마쳤을 뿐이다. 매해 휴가철이면 사람들로 붐볐던 우스이소 해수욕장도 텅 비어 있다. 이 곳 주민인 한나 모리(23)씨는 “피해자들은 5년이 지난 지금도 가설주택에 살고 있다. 해안에 벽만 쌓고 있는 정부를 보면 정말 이들을 신경쓰기나 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와키는 관광지인데다 도시규모도 꽤 갖추고 있어, 가장 복구가 빠른 축에 속한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으로 향하는 6번 국도. 사고 이후 폐쇄됐던 도로는 다시 개방됐지만 통행하는 차량은 많지 않다. 피에르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후쿠시마 원전으로 향하는 도로 주변 곳곳에 일본 공산당이 세운 원전반대 포스터들이 눈에 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6번 국도: 원전으로 가는 길

이와키에서 6번 국도를 타면 후쿠시마 제1발전소가 있는 후타바를 지나 미나미소마에 닿는다. 나미에마치, 후타바마치, 도미오카마치 등 사람이 아직 살지 못하는 곳을 모두 거쳐가는 핵심 루트다. 이 도로는 사고 4주기 직전인 지난해 봄 개방됐다. 도쿄전력 관계자는 “일반차량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지만 발전소 노동자들의 출퇴근시간을 빼면 건설물자를 나르거나 제염작업에 동원된 트럭과 경찰차들만이 오갈 뿐이었다.

창 밖으로 색이 바래고 부서진 건물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5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무성한 수풀에 뒤덮여 간판마저 알아보기 힘든 곳이 됐다. 매년 가을걷이가 끝나면 건초더미가 쌓였을 논밭에는 제염토를 담은 검은 포대들만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겐시료쿠, 아카루이 미라이 노 에너지’(원자력, 밝은 미래의 에너지)라고 원전을 홍보하던 간판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대신 방사선 계측치를 실시간으로 알리는 전광판이 생겼다. 후타바마치를 지날 때 전광판은 4.2μsv/h(서울의 42배)를 표시하고 있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로라는 말이 무색했다.

사람대신 야생동물이 사는 마을

“요즘 마을에 곰과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고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일본 최대 명절인 오봉(양력 8월15일)을 앞두고 찾은 도미오카마치에서는 확성기 방송이 반복되고 있었다. 도미오카마치는 쓰나미와 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된 곳. 부서지고 무너진 집들은 안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주인을 잃어버린 장난감과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집기들 뒤로 2011년 3월 이후 넘겨지지 않은 달력이 보였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운동장에는 태양광을 활용한 방사선 계측기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차지한 건 야생동물들이었다. 이 지역 출신으로 피난생활 중인 다카하시 유지씨는 “오랜만에 집에 가보니 타조가 들어와 있어 영화 쥬라기공원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또 다른 날에는 길에서 돼지무리를 만났는데 야생돼지와 집돼지가 만나 새끼까지 낳았더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유령도시이지만 그래도 명절이면 귀향객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누구도 말문을 쉽게 열지는 않았다. 기차역이 사라진 자리에 세워진 작은 희생자 추모비 앞에 서서 길게 묵념할 뿐이었다.

후쿠시마현 도미오카마치에 버려진 집. 지진 및 쓰나미 피해가 컸던 이곳의 달력은 쓰나미가 닥쳤던 2011년 3월 이후 한장도 넘어가지 않았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도미오카마치는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가 됐다. 낮에만 노동자들이 제염작업을 벌일 뿐이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지금 후쿠시마 원전은

재앙의 진원지 후쿠시마 발전소를 지난해 10월 외신공동취재단과 함께 방문했을 때, 약 7,000여명의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 중 절반 가량은 후쿠시마 출신. 도쿄전력 관계자는 “작업 초기에는 전면 마스크를 썼지만 지금은 절반, 그리고 대부분 작업장에서는 먼지용 마스크만 쓰면 될 정도로 상황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고농도 방사선이 누출되고 있었다. 특히 수소폭발이 있었던 3호기와 콘크리트 건물이 심하게 손상된 4호기 옆을 지날 때는 차 안이었는데도 무려 400μsv/h(서울의 약 4,000배)까지 치솟았다. 해측 차수벽 등 노동자들이 버젓이 작업중인 지점들에서도 계측기는 쉴 새 없이 ‘삐삐’ 울려댔다. 최고 9.99μsv/h밖에 측정하지 못하는 개인용 계측기 숫자는 고장 난 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 세워진 해측 차수벽.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는 상황을 막고자 건설됐지만 그 실효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도쿄전력 제공

현재 후쿠시마 발전소는 30~40년을 내다보고 폐로 과정을 밟고 있다. 2013년 4호기의 연료봉을 모두 빼냈지만, 1~3호기는 방사능 오염이 심해 꽤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는 상황도 아직 해결이 요원하다. 원전 땅속 지하수를 얼리겠다는 ‘동토 차수벽’은 실패로 돌아갔고, 원전과 바다 사이를 막은 ‘해측 차수벽’도 그 실효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원전 내 몇 년째 방치된 물탱크들은 최대 골칫거리다. 이렇게 보관 중인 오염수만 약 70만 톤에 이르는데, 원전 건물 지하에서는 매일 300톤 가량의 오염수가 발생하고 있다. 오노 아키라 발전소장은 “2020년 올림픽 전까지 오염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자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녹아 내린 연료봉을 제거하는 폐로작업은 전례가 없었던 만큼 아무도 정확한 시기나 비용을 예측할 수 없다. 도쿄전력은 지난해 6월까지 폐로 비용으로 약 4,300억엔을 지출했는데 향후 10년간 최소 1조엔이 더 들 것으로 추산된다.

도쿄전력 관계자들은 견학이 끝난 뒤 “안젠니”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모쪼록 안전하라는 뜻. 방사능이라는 치명적 위험과 생활하는 이들이 이곳을 나가는 취재진들에게 던지기에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인사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후쿠시마원전 위치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 앞바다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제 1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발전소 침수로 전원과 냉각 시스템이 파손됐고 핵연료 용융과 수소폭발로 이어지면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도쿄전력은 방사성 물질 누출량이 체르노빌의 15%이하 수준이라고 주장하지만, 오염수가 지속적으로 새고 있다는 점에서 피해는 더 장기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세슘 방출량을 기준으로 하면 히로시마 원폭의 168개 분에 달한다.

사고 뒤 원전의 반경 20km 이내 주민 16만 명이 대피했고, 여전히 10만 명 이상이 피난 중이다. 지난 5년 동안 자살, 고독사 등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를 정부가 공식인정한 사례는 없다. 체르노빌 사고와 함께 국제원자력사고등급 최고 단계인 7단계로 기록됐다.

후쿠시마=김혜경기자 salutkyeong@gmail.com

다무라 히사노리 hisanori.ymr@hotmail.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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