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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내 ‘아들’ 창택이는 사진사

입력
2016.01.2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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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저 이달 말에 가게 문 닫아요. 제 물건들 중에 아부지 필요한 거 있을지도 모르니 한번 들러요.”

갑자기 들려온 전화 속 ‘아들’의 얘기에 하던 일 하려던 일 다 멈추고 바로 그를 찾아갔다. 필요한 물건 따위를 둘러 볼 생각은 없었다. 근래 들어 가게운영이 쉽지 않다는 얘기를 몇 차례 전해 들었기에 결국 문을 닫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짙게 성긴 탓이었다.

그의 이름은 ‘임창택’, 나와는 두 살 터울의 손아래 아우인 그는 농담 반 진담 반 나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같은 ‘나주 임씨’로 본관이 같아 장난 삼아 서로 그리 부른지 오래 된 것이다. 남들 보기에는 우스운, 그러나 막역한 부자지간처럼 인연을 다져 온 그의 가게는 다름 아닌 사진관이다. 홍익대학교 정문 가까이에서 11년 넘게 ‘지오 스튜디오’라는 사진관을 운영해오며 ‘창택’은 사람들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내는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여겨왔다. 그가 수도 없이 남긴 “웃어보세요”라는 말에는 단지 웃는 표정을 지으라는 의미보다는 당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다시 가장 행복해 할 수 있는 꿈이 무엇인지를 상상해 보라는 것에 더 가까웠다. 손님들에게는 억지웃음이 아닌 자신에게 배어 있는 행복의 의미를 살피는 시간이었고, ‘창택’은 자신의 얼굴을 대하는 양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셔터를 눌렀다. 오히려 손님보다 자신이 더 맘에 들 때까지 다시 찍는 일이 자주 있을 정도였다. 면접시험 잘 보고 합격했다며 음료수를 들고 찾아온 손님, 해마다 가족사진을 찍으러 오는 가족들, 지금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도움을 주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인연으로 가족처럼 여기고 있는 한 20대 청년에 이르기까지 ‘창택’의 사진관에는 늘 사람들의 조곤조곤한 일상의 얘기들이 ‘수다스럽게’ 넘쳤다. 그가 아끼는 낡은 노트 세 권에는 약 3만, 4만여 명 손님들의 연락처가 빼곡하게 담겨 있다. 사진관을 그만두긴 하지만 지난 기간 동안 거의 빠짐없이 기록해 뒀다는 그 노트를 당분간은 간직하고 싶단다. 귀한 사람들과의 짧지만 소중한 인연들에 너무 감사하기 때문이란다.

“희망을 보려 하지 어둠을 볼 생각은 없어요. 하하하.”

그의 말이 막힌 폐부를 슬며시 뚫어주고 넘어간다. 촬영 장비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 사진관 안에서 이 늙다리 ‘아들’은 애써 아쉬움을 가린 채 이제 채소를 키우는 농사꾼으로 살아가겠다는 자신의 새로운 꿈 얘기를 들려주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딴 그는 요양원의 노인어른들을 도우며 영정사진 찍어드리는 일까지 도맡아 하곤 한다. 병들어 생의 끝자락에 접어든 노인들의 웃음을 보며 최선을 다하는 자신의 삶에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남자 주인공 ‘정원’(한석규 역)의 직업은 사진사이다. 조그마한 동네 사진관의 주인인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을 원망하면서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 전까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수십 번도 넘게 본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인 ‘다림’(심은하 역)과의 사랑 이야기보다 진심 어린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정원’의 태도에 더 많은 공감의 시선을 던지곤 한다. 특히 자신의 영정사진을 다시 찍기 위해 홀로 사진관을 찾아 온 할머니를 대하는 ‘정원’의 모습은 너무도 맑고 정감이 가득하다. 동정심이나 연민에 기대지 않은 채 상대의 마음을 편안히 이끌어 주는 그 장면은 언제 다시 봐도 감동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영화 속 ‘정원’ 못지않은 심성으로 늘 사람을 살피는 나의 아들 ‘창택’이의 새로운 길에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는 웃는 얼굴을 남기는 사진사입니다. 앞으로도 쭉 그럴 겁니다.”

한결같은 사람, ‘창택’이 지난 술자리에서 남긴 말이 다시 가슴에 밀려들어 온다.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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