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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양대지침 예고 후 현장에선 ‘저성과자 해고’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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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양대지침 예고 후 현장에선 ‘저성과자 해고’ 급증

입력
2016.01.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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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해고 구제신청 작년 183건

전년보다 27%↑… 금융위기 때 능가

노동위도 갈수록 사용자 요구 수용

朴대통령 강공 발언 현실과 괴리

노동계 총파업, 소송 투쟁 채비

민노총 30일 서울 도심 시위

한노총과 입장 달라 연대 회의적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정인사 지침(일반해고 지침)에 쉬운 해고는 전혀 없다”고 장담하면서 노동계를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지침을 쉬운 해고 수단으로 악용하지 않겠느냐는 근로자들의 우려는 기우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기권(왼쪽 두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주최 노동개혁 양대 지침 설명회를 마친 뒤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의원들과 함께 브리핑을 하고 있다.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이기권(왼쪽 두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주최 노동개혁 양대 지침 설명회를 마친 뒤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의원들과 함께 브리핑을 하고 있다.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지침 예고 뒤 저성과 해고 급증

일반해고 지침은 예고된 것만으로도 이미 산업현장에 영향을 미쳤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저성과자 해고 근거를 담은 정부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한 뒤 실제로 업무성과 부진 등을 이유로 삼은 해고 구제신청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 ‘노동위원회 판정례로 본 일반해고 지침의 위험성’을 보면, 작년 한 해 노동위에 접수된 저성과 해고(업무 능력 결여와 근무 성적 저조 등이 사유가 된 해고) 구제신청 건수는 183건이었다. 2014년(144건)보다 27%(39건)나 증가한 수치다. 세계 경제위기 탓에 구제신청 건수가 140건까지 치솟은 2007~2009년 이후 내림세를 보이던 저성과 해고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107건)부터 매년 20건 안팎 사례가 늘더니 지난해부터 경제위기 당시 수치를 훌쩍 넘고 있다.

노동위도 태도를 바꾸는 분위기다. 2001년부터 14년간 업무 저성과를 이유로 한 정규직 해고 사건 115건 중 불과 11건만 정당하다고 판단했던 노동위는, 작년 한 해에만 4건의 구제신청에 대해 사용자의 손을 들어줬다. 두 가지 변화 모두 정부 지침의 효과라는 게 노동계의 해석이다. 민주노총 측은 “지침 시행 이후 사업장에서 저성과자 해고가 크게 느는 건 물론 노동위가 이들을 정당한 해고로 인정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근로자들 괴롭혀 온 ‘갑질 해고’

정부의 일반해고 지침 시행에 대해 노동계는 그간 객관적이고 공정한 업무평가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결국 평가자 주관에 좌우될 수밖에 없어, ‘갑질 해고’가 불가피한 구조란 지적이다. 실제 저성과를 핑계 삼은 다양한 부당해고가 근로자를 괴롭혀 왔다.

우선 근로자가 성과를 못 내도록 환경을 만든 뒤 저성과자로 낙인을 찍는 방식이다. 1989년 S은행에 입사한 뒤 기업금융부 부장으로 근무했던 A씨는 2013년 신규사업 기업섭외(RM) 직무로 배치됐다. 이후 평가에서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은 A씨는, 이듬해 경력과 별 상관 없는 업무추진역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지난해 2월 서울노동위는 ‘A씨가 배치된 RM 직무에 조직적인 지원이 없었던 만큼 성과도 낼 수 없었다’며 부당전보로 판정했다.

명예퇴직 거부 등으로 사용자에게 밉보인 직원도 해고 위협에 고통 당했다. 담배 제조사 B업체에 2004년 입사, 부장으로 근무해 온 C씨는 2013년 명예퇴직을 권고 받았다가 이를 거부하자 이듬해 낮은 업무평가를 이유로 2차례 교육 훈련을 받은 뒤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교육훈련 기간에 상급자 지시에 따르지 않았고 톨게이트 비용 20만원을 부당하게 청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징계해고됐다. 이에 대해 지난해 6월 중앙노동위는 “행위가 고의적이라고 단정하기가 어렵고 회사 경비를 유용한 금액에 비해 징계가 지나치다”며 해고를 부정했다.

기약 없는 대기발령 등 배치 전환으로 퇴사를 압박한 사례도 있었다. 펌프 제조업체 D사에서 근무해 온 E, F씨는 평가 점수가 낮단 이유로 2014년 12월 권고사직을 요구 받았다. 이를 거부하자, 열흘 뒤 회사로부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통보와 함께 대기발령 조치가 돌아왔다. 이에 대해 지난해 3월 부산노동위는 “저성과자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기간을 정하지 않은 데에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고 대기발령 기간에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없었다”며 부당 처분이란 판정을 내렸다.

김동만(왼쪽) 한국노총 위원장이 2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양대 지침 강행 관련 회원조합 대표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동만(왼쪽) 한국노총 위원장이 2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양대 지침 강행 관련 회원조합 대표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파업 한다지만 동력 없는 노동계

대통령의 강공이 현실과 괴리된 인식에 기반하고 있지만, 노동계로선 맞불을 놓을 만한 동력이 사실상 부족한 상태다. 민주노총은 25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지만 당장 현실화하긴 어렵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수요일(27일)에 금속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간부 중심으로 현장 동력을 끌어올려 30일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속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하루 4시간씩 부분파업의 형식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고 얼마나 확산될지도 미지수다. 경기가 안 좋은 데다 치안당국의 엄정 대응 방침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섣불리 파업에 돌입했다간 노동계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 민주노총은 양대 지침 시행에 맞서 ▦학대 해고 및 ‘일터 괴롭힘’ 방지 ▦행정지침 시정 요구 등 국회법 개정 ▦국회에 정리해고 요건 강화 요구 등 입법 투쟁을 벌이고, 이기권 고용부 장관에 대해서는 직권남용 및 위법한 직무수행 등을 이유로 고소, 고발 및 해임 건의 절차를 밟기로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당장 실효성을 거두기는 더욱 어렵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1997년만큼 힘을 합칠 수 있다는 데 대해 회의적이다. 지금으로선 4월 총선까지 정부에 끌려 다닐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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