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지카 바이러스 전 세계 확산 조짐

지카 바이러스의 가장 일반적인 감염증상은 소아의 경우 소두증이다. 한 브라질 소년이 소두증을 앓고 있는 영아를 안고 있다. AP연합뉴스
브라질, 콜롬비아 이어 美 본토 상륙
영국, 프랑스, 대만도 성인감염 발생
경제난 브라질 정부 초기 대응 실패
IOC 우려 표시하자 ‘모기와의 전쟁’
“최대 10만 건까지 감염 늘 수도…
축제 인파 겹치면 무작위로 퍼질 것”

미국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머리 크기가 정상보다 작은 선천성 기형 ‘소두증(小頭症ㆍMicrocephaly)’을 유발하는 ‘지카 (Zika) 바이러스’가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에 상륙했기 때문이다. 22일(현지시간) 미 뉴욕 당국은 이날 브라질 등 남미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온 시민 3명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역시 브라질을 여행한 임신부가 최근 하와이에서 소두증 아이를 출산해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을 우려하던 미 보건당국은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브라질발 지카 바이러스 공포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만 지금까지 지카 바이러스로 인한 4,000여건의 소두증 의심 사례가 보고됐고, 중남미는 물론 미국, 영국 등에서도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의 안이한 초기 대응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가져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2월 초 예정된 브라질의 ‘카니발 축제’가 지카 바이러스를 널리 퍼트리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중남미 국가들, 가임기 여성에 임신 단속 나서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지카 바이러스는 브라질 26개 주 중 21개 주로 확산돼 사실상 브라질 전역에 유행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보건당국에 신고 접수된 소두증 의심 사례는 3,893건. 이 가운데 실제 지카 바이러스로 인한 소두증이 확진된 신생아는 224명이다. 사망자는 46명으로 추정된다. 브라질 당국은 성인까지 포함하면 40만~140만 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 있다.

브라질과 인접한 중남미 국가들에도 이미 지카 바이러스는 널리 퍼져있다. 브라질 다음으로 감염자가 많은 콜롬비아에서는 지난해 1만1,000여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이 가운데 297명이 임신부로 확인됐다. 콜롬비아 정부는 가임기 여성들에게 “바이러스 유행이 끝날 때까지 임신을 미루라”고 권고했을 정도다. 자메이카와 엘살바도르 정부도 각각 2017년, 2018년까지 임신을 피하라는 ‘임신 단속’에 나선 상태다.

중남미 밖 국가들도 바이러스 확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일리노이 주에서 임신부 2명이 지카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후 하와이 플로리다 뉴욕 등에서 순차적으로 환자가 발견되면서 지카 바이러스의 안전지대를 벗어났다. 이밖에 비교적 중남미와 멀리 떨어진 영국과 프랑스, 대만에서도 성인 감염자가 발생해 브라질발 지카 바이러스 공포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는 엘살바도르의 산 살바도르 주택가에서 방역직원이 21일 모기방제작업을 벌이고 있다. 산 살바도르=EPA연합뉴스
방역 실패가 부른 ‘인재’

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된 이 바이러스가 어떻게 브라질에 유입되어 유행했는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의료계는 세계 각지 축구팬들이 몰렸던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유력한 원인으로 보고 있으며, 모기 번식에 최적화된 브라질의 고온다습한 기후도 감염을 가속화한 배경으로 꼽는 정도다.

브라질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뎅기열ㆍ아르보바이러스 학회의 아서 티메르만 회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브라질 정부가 지카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간과해 초기 대응을 거의 하지 않았다”라며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소두증이 최대 10만 건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제난도 바이러스 대응 능력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지목된다. 브라질은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과 과도한 사회 복지 예산 지출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재정 부족에 빠진 공립 병원들이 의사와 간호사의 월급 지급을 연체하고, 떨어진 약품을 채워 넣지 못해 상당수 휴업에 들어가는 의료 비상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경제난이 가져온 의료 공백이 방역과 예방 조치, 초기 진단 실패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세계의 축제가 세계의 재앙 되나

모기 등 해충을 통해 감염되는 지카 바이러스는 접촉 전염이 이루어지는 조류인플루엔자(AI)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ㆍMERS)과 달리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럼에도 세계가 브라질에 이목을 집중하는 이유는 내달 수백만 인파가 몰리는 ‘카니발 축제’가 개막하기 때문이다.

실제 브라질의 2월은 우기가 시작되는 한여름으로 모기 번식이 1년 중 가장 왕성한 시기이다. 관광객들은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축제에 참가해 모기에 물릴 확률도 높다. 브라질 전염병학회의 낸시 벨리이는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카니발에 참가하는 수백만 인파와 지카 바이러스의 결합은 질병을 무작위로 퍼뜨리는 ‘폭발적인 칵테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더구나 브라질은 올해 8월 ‘2016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세계의 축제’가 ‘세계의 대재앙’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브라질 올림픽위원회 마리우 안드라지 대변인은 “리우 올림픽이 열리는 8월은 겨울철이라 바이러스 감염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공개적으로 지카 바이러스 확산에 우려를 표시하는 등 공포가 쉽게 진화되지 않고 있다.

결국 방역에 뒷짐을 지고 있던 브라질 정부가 뒤늦게 모기와의 전쟁에 나섰다. 모기퇴치를 위해 3억 달러(약 3,597억 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힌 보건 당국이 곧바로 군인과 보건소 직원들로 이뤄진 수백 개의 방역 팀을 꾸려 주택가 모기 번식지 방제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낸시 벨리이는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여름이 다가오는 지금은 방역에 있어선 최악의 시기”라며 “단시간에 상황을 종식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밝혔다.

세계 각국도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브라질 정부와 공동으로 지카 바이러스 연구에 나서는 한편, 브라질 등 중남미 22개 국가를 여행 자제 국가로 지정했다. 세계 보건기구(WHO)는 각국 정부에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을 경계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현재까지 국내 감염 사례는 없지만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경계수위를 올리고 위험지역 여행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최근 남미 여행객이 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며 정부도 중남미를 여행한 여성들에게 지카 바이러스 검사를 받도록 권고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질병관리본부는 “임신부는 중남미 등 지카 바이러스 유행 지역 여행을 출산 이후로 연기하라”고 당부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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