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사람과 비교하면 한국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한다. 큰 차, 큰 아파트, 큰 호텔, 큰 교회, 큰 결혼식, 킹 사이즈 침대, 큰 선물, 큰 그릇(냉면, 비빔밥 그릇), 크고 높은 케이크(프랑스식 과일 파이와 비교하면). ‘작은 것이 예쁘다’라는 말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커야만 좋은가 보다. 그렇기 때문에 소유한 물건보다 더 큰 걸 찾기가 어려워지면 작지만 고급스러운 걸 찾는다. 국산차 에서 외제차로, 큰 목걸이에서 다이야몬드 목거리로, 큰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한 커플씩만 받는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바꿔 보기도 한다. 크거나 고급스러운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크든 아니든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좋을 수 있다.

프랑스 사람은 물건을 고를 때 보통 환경에 따라 결정하는 반면, 한국 사람은 무조건 크고 비싼 걸로 선택하는 것 같다. 한국에 살다 보니 그런 차이가 눈에 띈다. 프랑스에서는 별로 크지 않은 집인데도 평생 동안 한 집에 사는 사람이 있다.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집이 좁아서 살기가 힘 들어졌다든지 집 근처 환경이 마음에 안 든다든지 직장을 먼데에서 새롭게 얻었다든지 불가피한 이유가 있어야 이사를 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큰 것 이 좋다’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작은 아파트에 살다가 별 필요도 없는데 더 넓은 새 아파트로 옮기는 사람이 대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사 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보다 살다가 꼭 집이나 차나 뭔가 크게 바뀐 것이 있어야 기분이 좋고 남이 볼 때 그 집이 잘산다는 것처럼 보이니 체면도 산다.

문화라는 것이 그 만큼 무서운 것이다. 문화라는 단어를 흔히 쓰는데, 문화예술 의미로 쓸 때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미술, 문학, 철학 차원에서 말고 인류학 사회학의 개념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질 수도 있다. 한 나라 문화 속에서 좋고 나쁜 습관이 생기고 그 습관들은 문명의 발달에 따라 조금씩 변해 간다. 문화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이 돈을 물 쓰듯이 하지 못 하고, 한국 사람들은 돈을 잘 쓴다. 문화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은 논리적이고 상황과 필요성에 맞게 물건을 구입하는 습관이 몸에 베인 반면에 20세기 중반까지 가난한 민족이었던 한국 사람들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무조건 크고 좋게 보이는 제품과 행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큰 것을 좋아하는 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사고방식은 물질적인 세계에서부터 정신적인 세계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요즘처럼 새해가 시작돼 소원을 빌 때에도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하게 된다. 일단 결심을 크게 한다. 그런데 ‘작심 삼일’이라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결심했다고 해서 끝까지 실행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알지만 일단 희망을 크게 하고 싶다. 시시하게 결심하는 건 재미가 없다. 차라리 욕심을 부리는 것이 더 멋있게 보이고 더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느끼는 원인은 한국인의 머리에 박힌 문화와 사회, 교육적 사고에서 찾아야 한다. 프랑스 사회의 교육은 다르다. 프랑스 사람들은 미래와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 일반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 비판적 생각을 많이 한다. 둘 중에 어떤 사고방식이 더 좋을까.

개인적으로 한국인처럼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크게 생각하고 크게 말하는 것 보다 지속적인 작은 희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매력적일 때도 있다. 2016년 나의 소원이 작은 것뿐이다. ‘가끔 하늘을 보고 하늘의 아름다움과 함께 했으면’ 하는 소원이다. 가끔씩 만 하늘을 향해서 눈을 올려 보면 되니 스트레스 받을 것이 없다. 오늘은 하늘을 볼 여유가 없으면 내일 해도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런 것이 좋다. 그런 것이 나의 자유이기도 하다.

마틴 프로스트 전 파리7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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