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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착한 남자가 지금 해야 할 일

입력
2016.01.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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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38개 경제단체가 시작한 민생입법 촉구 천만서명운동에 참여해 온라인 서명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38개 경제단체가 시작한 민생입법 촉구 천만서명운동에 참여해 온라인 서명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그 사람 어때?”

“응, 착해.”

얘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때가 있다. 성정(性情)이 어떤가 묻질 않았는데도 성품이 좋다는 말이 첫 마디에 돌아오고 마는 건, 묻는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분야에선 별로 들을 말 없다는 얘기란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안다.

신임 경제부총리가 지명되었을 때도 그랬다. 그를 알 만한 전직 관료, 원로들, 공무원 등에게 그에 대해 묻자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같이 일 해 봤는데 참 성품이 훌륭한 분이에요”라거나 “자기 의견 먼저 말씀하시는 걸 못 봤습니다, 아랫사람에게 절대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 분이죠”라는 식이다. 한 야당 인사도 그의 인품에 대해서만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금만 액션이 커도 적을 만들기 십상인 정치판에서조차 “적이 없다”는 평가가 나왔으니 인품은 그 정도면 공인된 수준이다. 이번에 그를 처음 경험해 본 공무원 역시 평가의 첫 마디로 “착하다”는 말을 했다.

반면 능력이나 업적에 대한 평가는 별로 없었다. “스펙이 좋다”거나 “잘 하실 거다” 정도였지, “잘 하셨다”는 말은 없었다. 그의 전 직장(국토교통부) 쪽에서도 그랬고, 국회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관직 8개월, 국회의원 재선 임기는 나서지 않는 성품을 가진 이가 화끈하게 능력을 알리기엔 다소 부족한 기간이었기 때문이라 믿고 싶다.

그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보수ㆍ진보를 가리지 않고 두루 박했다.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언론은 사설을 통해 “경제위기 맞설 전략이 안 보인다”(동아일보),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걱정스런 상황 인식”(한겨레)이라 비판했다. 한 신문은 ‘순둥이’란 별명을 붙여주기까지 했는데, 사인이 아닌 조직의 장으로서 굴욕적인 일일 수 있다.

여기에 자극받은 것일까? 만인에게 착하단 소릴 듣던 이 남자가 갑자기 ‘나쁜 남자’처럼 굴기 시작했다. 취임사에서 그는 “썩은 살을 도려내는”이라거나 “백병전 불사”, “나중에 즐기는 것도 사치”라며 전투적 어휘를 사용했다. 며칠 전 인사청문회에서 사람 좋은 웃음을 보여 주던 그가 말이다. 사람이 하루 아침에 변할 리 없는데. 그렇다면 이는 본인이, 또는 참모들이 계획한 의도적 이미지 메이킹이다.

이런 모습은 군기를 잡고 신발 끈을 졸라매는 정도에서 그치면 좋다. 문제는 이 착한 남자가 ‘나쁜 남자 전략’을 계속할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정계 언론 관계 등을 거치고 수많은 선거를 치르며 산전수전 다 겪은 전임자조차 야당을, 반대파를 힘으로 제압하는데 실패했음에도.

그렇다면 방법을 한 번 바꿔 볼 때도 됐다.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바로 자기 마음을 터놓고 상대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야당 협조를 받겠다면 싸우거나 각을 세우기보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율하고 합의를 이끄는 게 어떨까. 그러려면 당연히 양보도 해야 한다. 양보 하려면 저쪽도 설득해야 하지만 이쪽에도 섭섭한 얘기를 해야 한다. 지금 여권에서 애매한 스탠스를 잡다간 정의화나 유승민의 길을 걸을 수 있지만, 여권 안에서 자기 정체성만 확실하다면 진심을 인정받는 방법은 있을 거다.

이런 점에서 신임 부총리가 경제법안 서명운동에 먼저 나선 것은 좀 걱정스럽다. 개인 자격이라 해놓고, 공식 홍보라인을 통해 자료(사진)가 나왔다. 부총리는 사회운동에 동참하는 자리가 아니라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설득해야 하는 자리다. 설득하고 조율하고 조정하는 쪽에 적성이 맞는 사람이 강단과 돌파력을 추구하려 한다면, 이는 애초 인선이 잘못 되었음을 자인하는 일이다. 위기일수록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기술로 일을 풀어야 한다. 나쁜 남자 스킬을 갓 연마하기 시작한 지금, 수련이 덜 된 기술을 쓰다간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을 맞기 십상이다.

이영창 경제부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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