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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2046년, 우리는 무엇을 기릴 것인가

입력
2016.01.2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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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교육부는 연간 600억원씩 최장 3년을 지원하는 “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CORE)” 계획을 발표했다. 사업 취지는 말 그대로 대학의 인문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인문융성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대학의 인문역량 강화는 마땅히 도모해야 할 바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실상이다. 속을 들춰보면 그런 취지에 걸맞은 내용은 별로 없다. 하긴, 갖은 ‘사회적 갑’들이 수천 년간 검증을 거쳐 축적돼온 인문적 제 가치를 광범위하게 조롱하고 조직적으로 훼손하는 시절이니, 이 정도의 눈 가리고 아웅 하기는 감지덕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문융성은 그러한 협량(狹量)으로 도모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적어도 한 세대 정도는 내다보는 안목과 밀고 나갈 역량이 요청된다.

그러고 보니 2046년까지 꼭 30년이 남았다. 그 해는 한글 반포 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찬찬히 그 해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우리는 무엇으로 한글 반포 600주년을 기념하고 있을까. 세종을 칭송하는 목소리는 분명 지금보다 훨씬 커졌을 것이다. 문자가 없는 짜이짜이 부족과 아이마라 부족에게 한글을 표기수단으로 수출한 사례가 언급되며,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는 점이 연신 되뇌어질 것이다. 그때까지 국보 1호가 숭례문이라면, 이를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거세게 일 것이다. 그리고 또 무엇이 칭송되고 기려질까.

자신의 말과 표기 수단이 있다는 것은 비길 데 없는 큰 힘을 지녔다는 뜻이다. 그래서 문화 역량이 대단했던 중국과 그렇게 오랜 세월 맞붙어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역사적, 문화적 전통을 지닐 수 있었다. 일제가 그토록 말살하려 했어도 한글을 지킨 덕에, 해방이 되자 누구의 속국이 아닌 ‘우리’의 나라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힘을 지닌 한글로, 지난 6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일궈놓은 것이 외세에 맞서 우리를 지켰다는 점 외에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인문융성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우리의 인문’을 융성시키고 이를 국제적으로 발신해야 한다. 하여, 한국 발 인문이 지구촌 곳곳서 평화롭고 자율적이며 창의적 삶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게 된다면, 이는 뿌듯하게 내세울 만한 성취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한글을 ‘문명의 언어’로 고양시켜야 한다. 첨단 디지털 문명이 깔린 지금에도 그 위력이 여전한 고대 희랍어나 라틴어, 한문 같은 문명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못 돼도 근대 이래 국제적 문명어로 기능해온 프랑스어나 독일어, 영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누구의 문명이 아닌 우리의 문명을 일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한글에 담을 ‘우리의 문명’이 풍성해져야 한다. 문명은 인문의 총화이다. 그리고 인문은 인간다움의 집적이다. 우리의 문명은 우리의 인간다움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21세기 우리는 말 그대로 ‘글로벌’한 삶터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우리의 인간다움도 이러한 조건 아래서 조성된다. 우리의 인간다움이 ‘우리만’의 인간다움이어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이다. 곧 우리의 문명이면서 동시에 글로벌한 문명을 한글에 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한글이 동서고금의 문명과 풍요롭게 만나야 한다. 동서고금의 인문을 한글로 저장하고, 이를 한글로 다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랬을 때 한글은 독자적이며 보편적이고, 평화 지향적인 문명의 언어로 거듭나게 된다.

또한 이 사업은 해방 100주년을 준비하는 사업과 병행되어야 한다. 한글 반포 600주년 바로 전 해가 해방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우리 자신과 세계에 내놓을 것인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짧은 시간에 일군 역사는 분명 내놓을 만한 업적이다. 물론 지금은 8ㆍ15 해방이 지닌 중차대한 의의를 부정하는 세력에 의해 민주가 훼손되고, 중국의 굴기로 인해 경제가 위협받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일궈낸 저력이 손상되진 않는다. 다만 문화 방면에서 이에 필적할 만한 성취로 우리는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해방 100년을 기릴 수 있는 문화자산을,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안팎에 내놓을 자산을 만들어내야 한다.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채 지구촌에 이미 널리 발신된 중국문명, 일본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한글문명’을 창출해야 한다. 인문융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추동되어야 한다. 그것은 대학을 취업학원쯤으로 격하시키는, 그런 탐욕스런 대학 구조 조정을 무마하기 위한 포장지로 소모해도 되는 급이 결코 아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을 기리는 길은, 그의 초상을 만원짜리 지폐에 넣는 데 있지 않고 세계사의 한 페이지에 넣는 데 있다. 마찬가지로 인문융성의 길은 한글문명을 만드는 데 있지, 재정 지원을 당근으로 대학을 자본의 자회사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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