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응원 인파. 한국일보 자료사진

연초에는 훈훈한 덕담을 나누는 게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마저 어렵게 되었다. 지난 1월 6일 감행한 북한의 4차 핵실험 때문이다. 실험 직후 북한은 “첫 수소탄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발표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의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가기에는 충분하다. 그것이 미국이 ‘전략적 인내’라는 용어로 허용해왔던 한계치에 근접하고 있어 전쟁이라는 민족공멸의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13일에 가진 대국민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뼈아프게 느낄 수 있는 실효적인 제재 조치를 취해 나가기 위해 미국 등 우방국들과 긴밀히 협력해 나가고 있다”면서 강력한 제재를 예고했다. 우리 시간으로 같은 날 행해진 신년 국정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어떤 나라도 감히 우리와 우리의 동맹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라며 “그것이 파멸에 이르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들이 우리의 불안과 공포를 해소해줄 수는 없다. 북한 핵무기가 아직 미국을 타격할 수는 없겠지만 한반도를 지옥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북핵 대응책을 크게 분류하면 두 가지다. 미일 양국과 정부와 여당이 선포한 ‘강력한 제재’와 중국과 야당이 지지하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다. 그러나 그 둘 모두 실효가 없다는 사실은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지난 10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삼척동자도 다 안다. 게다가 1940년대에 미국이 일본에 가했던 원유절감을 통한 강력한 제재가 진주만 폭격을 불러왔고, 1930년대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이 히틀러에게 시도했던 대화를 통한 평화가 2차 세계대전을 불러온 역사적 교훈도 엄연하다.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우리 국민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다. 죽은 듯이 조용하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간단한 성명만 내던지고 청문회와 총선준비에 몰두하고 있고, 금융시장도 핵실험과 연관해서는 별다른 요동을 보이지 않았다. 정부를 향해 나름의 훈수를 두는 몇몇 지식인들의 발언은 있을망정 일반 국민들의 반응은 지금까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하는 1인 릴레이 시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대규모 집회나 시위도 없다. 국가와 민족의 존망이 걸린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정부와 미국, 일본, 중국과 같은 외세에 송두리째 맡겨놓은 채 무덤덤하다.

원인으로는 툭 하면 반복되는 북한의 전쟁위협에서 오는 학습효과가 한 몫을 하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무력감도 큰 몫을 차지한다. 어쩌면 우리가 국가의 모든 문제를 정당정치, 대의정치를 통해서만 해결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북핵보다 더 두려운 것이 국민의 무기력과 무관심이다.

전문가들은 작금의 한반도 정세가 국운을 외세에 맡겼던 구한말과 닮았다 한다. 일본 전문가 노 다니엘은 “경제는 어려워지고, 북핵은 해결 안 되고, 미국은 힘이 빠지는데 일본은 점점 목소리를 키운다. 우리는 그에 반발해 친중적으로 기울 공산이 크다”면서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지도자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날 선 지적이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 구한말의 정치는 명성황후와 대원군이 좌지우지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헌법 1조 2항에 명시되어 있듯이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자. 2002년 월드컵 때처럼 모여 북한에게, 그리고 미국, 일본, 중국에게 이 나라 주인의 목소리를 들려주자. 북핵을 성토하든, 북한 재제를 반대하든, 중국의 태도에 항의하든, 자위적 핵무장을 외치든 주인으로서의 목소리를 내자. 굳이 한 목소리가 아니어도 좋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의식이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만 당하진 않겠다는 것,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다시는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것, 우리의 주권은 우리가 행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외치자.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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