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예상 밖의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특이성이 있지만, 과거 북한의 행동 패턴으로 보았을 때 별반 놀라울 것은 없다. 어쨌든 우리 정부는 이 핵실험과 최근의 경제여건을 한 데 엮어서 현 시점을 안보와 경제의 동시 위기로 규정한다. 그리고 여기에 ‘일촉즉발’이나 ‘비상상황’이라는 군대식 표현을 통해 공포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지금이 진정 위기 국면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핵무기가 일으키는 공포심의 감정 위에서 정국을 운영하려는 우리 정부의 의사이다.

핵무기가 처음으로 국제정치에서 주요 요소가 되었던 것은 1945년 7월 제2차 대전 전후 처리 회의였던 포츠담 회담에서였다. 하지만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핵무기는 여전히 군사력의 일부일 뿐이었다. 핵무기가 국내외 현실 정치와 결합하는 이른바 핵정치가 등장했던 것은 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대 중엽, 즉 당시 소련의 실권자 니키타 흐루쇼프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부터였다. 그 시작은 수에즈 위기에 있다. 1956년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은 지중해와 중동 및 인도를 잇는 요체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했다. 이는 그 운하를 통해 19세기 이래 제국주의적 경제 질서를 지켜왔던 영국이 받아들일 수 없던 것으로, 영국은 프랑스 및 이스라엘과 함께 이집트에 군사 행동을 취했다. 이집트의 도움을 요청 받은 소련은 서방 세계에 대한 대항마로 아랍민족주의를 지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이를 수락했는데, 이 때 흐루쇼프가 썼던 카드가 바로 핵이었다. 흐루쇼프는 영국과 프랑스 등 이집트 문제에 개입한 서유럽 국가들에 핵무기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고, 이 위협에 결국 영국과 프랑스가 물러서게 되었다. 이제 소련 지도자는 국제관계에서 다른 모든 정치적 수단들보다 핵무기가 더 중요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상대적 약소국들은 이를 역사적 교훈으로 기억할 것이었다.

흐루쇼프의 핵 위협은 다분히 수사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졌지만, 서방 세계의 정치지도부와 문화 엘리트들은 이를 통해 실질적 수준의 공포 분위기를 창출해냈다. 언론은 연일 소련의 핵 잠재력을 보도했고, 영화 등 시각 매체가 전달하는 그 파괴력의 이미지는 서유럽 사람들을 절멸의 공포에 빠뜨렸다. 수에즈 위기 당시 직접 위협의 대상이 아니었던 미국인들 역시 곧 그 공포심을 공유했다. 1957년 10월,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지구 밖에 올려놓았다. 스푸트니크라 불렸던 이 위성은 전쟁용은 아니었지만, 미행정부와 언론은 그것의 궤도가 북아메리카 위에 걸치고 이를 올려놓은 미사일에 수 메가톤 급의 핵탄두가 탑재 가능하다는 점을 바삐 알렸다. 이제 미국 국민들은 핵무기가 초래할지 모르는 최종적 파괴를 연일 머릿속에 그리게 되었다. 그들은 핵공격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도심을 피해 교외로 거주지를 옮겼고, 어린 학생들은 핵폭발에 대비해 책상 아래로 숨는 훈련을 학교에서 받았다. 이런 핵공포 덕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 정부들이 제2차 대전 이후 그토록 불어넣기 원했던 반공 이념은 사회에 더 쉽게 흡수될 수 있었다.

이렇듯 핵을 이용해 국제정치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핵보유국 정치지도자들과, 이 핵무기가 주는 공포를 통해 자국 사회를 규율화하려는 핵공격 대상국 엘리트들이 함께 연출하는 핵정치가 냉전시대에 형성됐다. 전자는 핵을 빌미로 외국의 자국 정치 개입을 차단하며 자신들 정권의 안정성을 높이려 했고, 후자 역시 핵전쟁 위험성의 선전을 통해 잠재적 정치 반대파들의 도전을 무마시키려 했다. 이 양자가 조성한 핵공포 속에서 점점 더 체제 순응적이 되어갔던 일반인들의 모습은 냉전시대 전형적 핵정치의 양상이다.

냉전시대가 끝난 지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 핵정치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반복되고 있다.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외국의 군사 개입 가능성을 사전에 불식시켜 그들 체제를 유지한다는 북한 정권의 목적에는 어느 정도 부합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배가될 것 같다. 보다 강경해질 대북제재들이 그들의 삶을 옥죄여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더 그들은 그 고통을 자신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당위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며, 그 결과 현 북한 정권의 기반은 더 취약해 질 것이다. 한편, 이 핵실험을 이용해서 위기의식을 키우려는 우리 정부의 시도는 과히 성공적일 것 같지 않다. 그간 수많은 북풍 사건들 및 공포 조장 정치와 이번 사안과의 차별성을 느끼기는 어렵다. 지난 수년간의 주요 선거 결과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북으로부터의 공포에 휘둘리던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는 1970년대 냉전 담론인 ‘월남 패망’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남북한의 사회는 냉전시대로부터 멀리 벗어나고 있지만, 그 정치지도자들은 그렇지 않나 보다.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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