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략 무기인 B-52 장거리 폭격기가 10일 오후 우리 공군의 F-15K, 미군의 F-16과 함께 경기 오산공군기지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2016.01.10.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박근혜 대통령이 군복을 입고 전선으로 달려갔다. ‘통일대박’의 확성기가 다시 가동되어 천방지축 날뛰는 북한을 맘껏 조롱하기 시작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유엔도 새로운 북한 제재안을 만드느라 분주해졌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단골손님’인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가 한반도 상공을 가로지르며 거나하게 핵 시위를 벌였다. 북한보다 강하고 세련된 핵무기를 가진 미국의 엄청난 핵우산을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모두들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를 이미 여러 차례 봐온 우리는 이것들이 결국 한바탕 쇼에 불과하고 북한 핵문제 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평양 전체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미국 핵폭격기의 등장에 박수를 보내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가공스러운 북한의 핵 장난은 더 강력한 핵 위협과 공포를 통해서만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한 논리다. 하지만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불태우자는 격 아닌가.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북한이 여기에 순순히 굴복할 리가 없고 오히려 이런 군사적 압박은 북한의 핵개발을 더욱 부추길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의 핵위협에 더 강력한 핵위협으로 맞서다가 자칫 상호간에 오인(誤認)이라도 하게 된다면 ‘거대한 버섯구름’을 동반하는 방사능 피해를 고스란히 한국이 뒤집어써야 한다. ‘통일 대박’은커녕 ‘통일 아마겟돈’이다. 이런 위험한 핵 위협 공방전에 마냥 박수를 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나 한국 당국이 정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2012년 4월 북한이 식량 원조를 받는 대가로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2·29 합의’(2011년)를 파기한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명분으로 실질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기만 해왔다. 한국도 ‘통일 대박’이라는 공포탄만 난사했을 뿐 미국의 대북정책에 동조해왔다. 사실상 북한 핵문제를 방치해 둔 것이다. 신뢰할 수 없는 북한, 망하기 직전인 북한은 고통을 주면 언젠가는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환상’이 작용한 것이다. 이 와중에 북한은 더욱 핵기술을 가다듬었고, 점점 ‘불가역적’인 괴물을 만들어왔다.

물론 북한의 잘못된 행위대한 제재는 필요하고 당연하다. 하지만 북한 체제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제재가 마땅치 않고 제한된 수단들조차 그다지 효험이 없었다는 것 또한 입증됐다. 미국은 ‘군사적 타격’이라는 공포와 새롭고 강력한 제재가 뒷받침되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낼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안보 딜레마만 가중시킬 뿐이다. 북한의 핵을 바로 곁에서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우리가 태평양 건너 미국의 장단에 덩달아 놀아나서는 곤란하다.

원래 어불성설인 ‘통일 대박’을 더 이상 말하지 말자. 그렇다고 한반도 비핵화만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큰 틀의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다만, 한 번도 실천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북한의 핵위협을 또 다른 위협으로 맞대응 해 위협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명분이나 이익 자체를 해소해 줌으로써 전체적인 위협을 차근차근 줄여나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나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한반도 군비통제와 군축, 한국이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명확하게 밝히는 것 등이 그것들이다. 괘씸한 북한에 이런 ‘선물’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들은 북한에게만 이득이 되는 선물이 아니라 한국과 관련국들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다.

이제 북한에 대한 분노는 삭이고 냉정해져야 한다. 위기를 부추겨 ‘강대강’ 대결로 몰아가는 것은 정권안보에는 보탬이 될지 모르겠으나 국가안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핵실험이 추가적인 위기로 치닫지 않도록 단호하면서도 절제된 자세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관련국 간의 ‘외교’ 공조를 주도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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