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나 양초라는 단어를 들으면 뭐가 떠오르세요? 어떤 분들은 기도의 순간이, 또 어떤 분들은 독서와 몽상의 시간이 떠오르겠죠. 물론 다른 분들은 광장의 기억이나 안타깝게 죽은 이들을 애도하던 순간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촛불에서 불나방들의 무모한 싸움과 혼미한 광란의 순간을 발견합니다. 그렇지만 촛불의 반짝임은 어떤 이들에게는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시인은 간격에서 찾는 것 같습니다. 촛불에 너무 가까이 가면 불에 타고 지치지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 빛과 용기를 얻습니다. 모든 만남이 다 그런 것 같아요. 한 사물이나 누군가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모습이나 표정이 잘 안 보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궁금하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코앞까지 다가가도 역시 잘 안 보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내 얼굴에 눌린 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보려면 적정거리를 찾아내야 합니다.

루이 에미에라는 작가는 이렇게 썼어요. “나의 고독은 벌써 준비되었다./그것을 태우려고 하는 것을 태우려고.”(‘불의 이름’) 그렇군요. 무언가를 제대로 비추려면 홀로의 시간을 태우는 촛불처럼 고요하게 제 속을 응시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시간을 갖는 일이 쉽지 않네요. 시인은 고독이 자연스럽고 이미 준비되어 있는 거라 속삭이는데, 우리는 매번 고독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며 도망치니까요.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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