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지대 동부 분리독립과 자유선거 주장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의 외교단절 사태를 초래한 시아파 지도자 님르 바크르 알-님르(사진)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그는 사우디 내 시아파 신도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인물이며, 사우디는 이슬람 수니-시아파의 갈등 악화에도 불구하고 왜 알-님르의 처형을 강행하는 무리수를 둬야만 했을까.

알-님르는 사우디내 소수 이슬람인 시아파를 대표하는 성직자이다. 지난 2010년부터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을 휩쓴 '아랍의 봄' 사태가 이듬해 사우디 시아파 중심지인 동부 카티프지역까지 확산됐을 당시,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이 바로 알-님르이다.

1959년 생인 알-님르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아랍의 봄' 이 일어나기 이전인 2000년대 중반부터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외교 전문에 따르면, 미국 외교관들이 지난 2008년 알-님르를 만나 사우디 내 정치상황을 논의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외교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는 당시 미 외교관들에게 시아파 종주국가인 이란과 거리를 두면서, 사우디 내 시아파에 대한 차별철폐운동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알-님르는 이슬람 수니파는 물론 시아파의 폭압적 정치지도자들에 대해서도 가차없는 비판 목소리를 냈다. 2011~2012년 카티프 지역에서 시아파 주민들의 시위를 사실상 이끌면서도 폭력보다는 평화적 시위를 주장했다. 알-님르는 지난 2012년 거주지인 알아와미야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부상을 입기도 했다.

사우디 정부가 이란은 물론 국제사회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알-님르의 처형을 강행할 정도로 강경한 자세를 취한 이유는 그가 시아파 거주지이자 유전이 밀집된 동부지역의 분리독립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오일 머니에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 정부 입장에서 알-님르는 '돈줄'을 위협한 셈이다.

게다가 알-님르는 자유선거를 주장해 사우디 내 민주화 세력에게도 인기가 높아 왕정에 위협이 돼왔던 것이 사실이다.사우디 뿐만 아니라 인근 바레인 왕가에게도 알-님르는 눈엣가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사우디는 알-님르의 처형을 통해 소수 시아파의 준동을 막고, 동부 유전지역을 보호하는 한편, 민주화의 싹을 자르겠다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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