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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덕 칼럼] 청년 스스로의 철학과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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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덕 칼럼] 청년 스스로의 철학과 조직

입력
2015.12.3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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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키며 회자된 용어는 단연 금수저였다. 현재 청년들의 상황에 대한 한탄과 자조 섞인 인정만을 표현했던 헬조선이나 N포 세대와는 달리, 금수저는 한국 사회의 계급문제를 직접 겨냥하면서 더 큰 반향을 불러냈다. 이런 분위기를 두고 일각에서는 본격적인 세대 갈등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치며, 이를 이념 대결과 같은 사회분열 문제로 취급하기도 했다. 지난 한 해의 분위기를 진정 세대 갈등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부정적인 현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역사를 보자면, 청년들이 제기했던 세대 문제는 사회를 진일보시키는 에너지로 작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서양의 역사에서 세대 간 문제가 가장 첨예하고 극적으로 표출됐던 시대는 196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가치관, 생활태도, 정치이념 등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 청년들의 부모들은 직간접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전전세대로서,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로부터 자유를 지켜냈다는 평가에 더해 이제는 소련으로부터 이를 수호한다는 사명을 믿는 반공주의자들이었다. 더 중요하게, 이 기성세대는 1950년대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자신들의 손으로 이뤄냈다는 성취감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 중 상당수는 세계경제대공황과 전쟁 기의 곤궁했던 유년 시절을 넘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었고, 이 경험은 현재의 풍요로움을 지키려는 보수적 가치관으로 이어졌다. 19세기 유럽 부르주아 문화의 재현이었던 이 가치관에는 개인주의, 핵가족주의, 남녀 역할 구분, 책임감, 출세욕 그리고 하층민과의 거리 두기 등이 핵심 요소를 이루었다.

한편, 대다수가 전후에 태어났던 1960년대 후반의 청년들은 위와 같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10대 때부터 밥 딜런의 저항적인 가사를 곱씹고, 비틀스와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몽환적인 사운드를 즐기며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청년들의 기억은 1950년대의 물질적 넉넉함과 함께 시작되었기에, 그 풍요로움은 소중히 지켜내야 할 대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이런 시대가 만들어내는 부정적 현상들, 이를 테면, 물질만능주의와 출세지향주의가 더 문제로 느껴졌다. 그들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기성세대가 벌이고 있는 국내외 정책들과 이 체제를 떠받치는 이념들에 분노했고 저항했다.

당시 청년들의 저항은 대학의 학내 문제에서 시작되었지만, 곧 이는 베트남 전쟁 반대나 흑인 민권 운동과 같은 정치사회 문제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 문명과 체제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당시 청년들은 문명의 이기나 제도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보다는 옥죄고 있다고 외치면서, 반(反)문명 운동을 일으켰다. 특히 서양문명의 물질 및 개인 지향성을 비판했던 여러 움직임들, 즉 히피들의 집단군거 생활, 인도의 명상 종교, 비(非)소련 낭만적 사회주의 등의 영향을 받으며, 그들은 인간이 지나치게 촘촘해진 문명의 인위적 망들에서 벗어나 자연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청년들의 외침은 현실정치에서의 ‘정권 교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들의 문명비판 메시지는 자연에 대한 관심을 높여 환경 및 생태 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기성 주류 문화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사회의 소수자 및 약자들, 특히 여성과 유색인종 문제를 더 심각하게 인식하게 해주었고, 이는 여권신장 및 민권 운동의 확대로 이어졌다. 또한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은 탈권위주의적 문화도 만들어냈다. 이후 미국 대학가에는 청바지 차림으로 강의하며 학생들과 수평적으로 대화하는 교수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으며, 이는 되레 세대 간 대화의 물꼬를 텄다.

60년대와 현재 ‘세대 갈등’의 차이는 우리의 청년들이 나름의 철학을 공유하지도, 조직되어있지도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그들의 불만은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달궜던 일베 논란의 경우처럼 인종주의, 지역감정, 이성(異性)혐오와 같은 저열한 관념들에 흡수당하면서, 파편화되고 왜곡된 형태로 배설될 뿐이다. 사실 금수저론의 파급력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청년 세대가 가진 불만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중요한 것은 이를 사회 비판과 변화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는 동력이다. 60년대에서 교훈을 얻자면, 그것은 청년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고 주도할 철학과 조직일 것이다. 소위 86세대에 선도적 역할을 기대하거나, 기성세대 명사를 멘토로 모시는(?) 것 등은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몇 년째 우리 대중문화계의 대유행인 오디션 프로그램들에서 기성 가수가 던지는 칭찬 또는 독설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만 하는 청년들의 모습과 같은 것에서는 그리 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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