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도망친 개는 나중에 밖으로 나오면 죽이면 된다”(한국측). “안 된다. 아예 숲 전체를 불살라버려야 한다”(일본측). 청구권협정이 체결되기 직전인 1965년 6월11일 한일은 숲 속으로 사라진 개 잡는 방법을 두고 이렇게 말싸움을 벌였다. 여기서 ‘개’는 다름 아닌 한국인 개인청구권이다. 일본은 혹시나 나중에 한국의 개인들이 제기할지 모를 청구권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숲 전체를 불질러버리자고 요구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조치가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의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과 3항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일본의 이런 ‘불가역적인’ 요구 사항을 받아들였고, 이후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군말조차 못했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회 및 제12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에서 인천 연수여고 학생들이 피해자 할머니들의 영정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개인청구권을 ‘숲으로 도망친 개’ 취급하면서 숲 전체를 불사르는데 동의했던 한국 정부는 이번 위안부 협상에서도 숲을 불살라버리자는 일본에 말려든 듯하다. 이런저런 일본측의 ‘성의’ 표현 나열 뒤에 이번 합의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대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논란이 일자 어느 정부 당국자는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우리측이 제안한 것으로, 일본이 뒷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지 감언이설의 수준이 지나치다.

청구권협정의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이라는 대목 때문에 청구권자인 한국이 오히려 정치적, 법적으로 ‘을’이 돼버렸듯이, 이번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는 앞으로 한국 정부를 옭아매는 족쇄가 될 것이다. 혹여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거론하면 일본은 이미 끝난 이야기인데 무슨 소리냐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갑을이 뒤바뀌는 형국이 연출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위안부 합의를 통해 한국 정부가 그 동안 표방해온 신념과 원칙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점이다. 이번 합의 어느 곳에도 청구권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은 이것이 사할린 한인, 원폭피해자 문제와 함께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한국 정부의 입장은 2005년 8월 ‘한일회담 문서공개 민관공동위원회’가 분명히 밝힌 이후 일관되게 유지되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이런 원칙이 무너졌다.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의 예외로 위안부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스스로 어긴 것이다. 일본측은 이번에 정부 예산으로 내놓겠는다는 10억엔이 ‘배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10억엔의 정체는 무엇인가. 50년 전 한국 정부가 대일 ‘청구권’으로 받았다는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에 대해 일본측은 경제협력자금 혹은 독립축하금이라고 말했다. 10억엔도 이와 비슷한 ‘성의’의 표현이지 법적 관계가 분명해지는 청구권 자금은 아닌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개인청구권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던 한국 정부는 50년 전처럼 사실상 피해자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피해 당사자가 포기하지 않은 개인청구권을 한국 정부가 포기할 수 있는가.

돌이켜보건대 박근혜 대통령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2013년 3ㆍ1절 기념사)이라는 초강경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이후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의 모든 것이 돼버렸다. 위안부 문제만이 지나치게 돌출되어 징용 피해자 문제 등 다른 현안들마저 뒤덮어버린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관계회복에 대한 조바심 때문인지 돌변해 위안부 문제라는 숲 전체를 불살라버리는데 동의해버렸다.

한일 양국 정부가 ‘불가역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덮어버렸다고 해서 한일관계가 ‘정상화’될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한일관계를 과거처럼 어떤 ‘특수한 관계’로 만들어보겠다며,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관계 정상화라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일 수 있다. 진정한 한일관계 정상화란 일반적인 국가 관계가 그렇듯이 갈등하면서 경쟁하고 협력도 하는, 그리고 원칙을 세워 따질 것은 따지는 관계이지 않을까.

이동준 일본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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