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이충재칼럼] 일자리 숫자놀음

알림

[이충재칼럼] 일자리 숫자놀음

입력
2015.12.28 20:00
0 0

정부 경제법안 추진하며 일자리 부풀려

서비스법 70만, 노동5법 37만 근거 미흡

과장된 통계는 청년층 절망감 키울 뿐

일자리 박람회에 몰린 청년 구직자들. 정부의 과장된 일자리 통계가 청년층에게 희망은커녕 좌절과 상실감만 더해준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자리 박람회에 몰린 청년 구직자들. 정부의 과장된 일자리 통계가 청년층에게 희망은커녕 좌절과 상실감만 더해준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발표하면서 34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언했다. 이런 약속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허구로 판명 났다. 공사 현장에는 중장비 굉음만 요란했고 일하는 사람들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의 일자리도 일용직이나 비정규직들로 채워졌다. 시민단체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2조원을 쏟아 부은 4대강 사업에서 일자리 개념에 부합하는 상용직 채용은 수천 개에 불과했다.

정부가 주요 정책과 법안을 추진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게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얻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워진 현 정부 들어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청년층의 절박함을 해소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나 숫자를 부풀리거나 과장하는 경우가 잦은 게 문제다.

여야간 쟁점이 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이 법이 통과되면 7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밝혔다. 근거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미발표 보고서다. ‘서비스업 개혁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한국의 서비스업이 독일 수준으로 발전하면 취업자가 15만 명 늘고,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하면 69만 명이 증가한다”고 돼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 1위인 미국 수준으로 서비스업이 성장했을 경우라는 전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보고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서비스업 개혁이 이런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한계도 분명히 지적했다. 이를 거두절미하고 법안 통과만 되면 수십 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여론을 호도하는 것밖에 안 된다.

노동5법의 시행으로 만들어진다는 일자리 숫자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향후 5년 동안 37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고무줄 통계’라는 의구심이 든다. 정부 추정치의 근거인 노동연구원 자료에 명시된 임금피크제 13만개, 근로시간 단축 15만개, 상위 10% 임금인상 동결 9만개를 합친 숫자가 37만개다. 그러나 여기에도 결정적인 전제가 빠져있다. 임금피크제의 경우 기업들이 절감되는 인건비를 모두 신규채용으로 돌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다수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는 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 문제는 경기가 악화하는 마당에 기업들이 그렇게 할지는 극히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도 주 52시간으로 줄어든 시간만큼 신규 인력을 고용해야 한다. 임금동결로 인한 일자리 창출도 100인 이상 사업장이 모두 임금동결에 동참하고, 임금동결이 곧바로 고용으로 이어진다는 가정하에서나 실현 가능하다. 결국 37만개 일자리는 희망사항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가까스로 통과된 관광진흥법과 국제의료사업지원법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대표적인 경제활성화법이라고 밝힌 두 법안을 통해 12만명의 고용 창출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 앞에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한 관광진흥법으로 생기는 일자리는 대부분 공사 기간 중의 한시적 일자리다. 그마저 호텔의 고용 행태를 고려할 때 비정규직 일자리가 상당수다. 영리병원, 병원 수출, 의료 관광 등 의료를 돈벌이 산업, 일자리 동력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취지의 의료지원법도 한국의 의료실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환자 간병을 가족에게 맡기는 문화에서 병ㆍ의원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선진국과는 반대로 사람을 줄이고 기계를 늘려야 병ㆍ의원에 돈을 주는 건강보험 체계는 당장 배출되는 의료인조차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정부와 기업들이 만들겠다고 발표한 일자리 숫자는 어림 잡아 100만개가 넘는다. 이대로라면 청년실업을 모두 흡수하고 전체실업률을 1%로 떨어뜨리는 엄청난 규모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잘못된 통계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고통과 좌절을 안겨준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는 숫자를 이용한다”는 영국 수상 디즈레일리의 말처럼 과장된 통계는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cj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