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의 반려동물이야기]

경제위기 때 상당수 버려져… 동물 귀찮아하는 문화도 한몫

동물보호단체 활동 미흡… 유기견카페 등 새로운 시도 환영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미틸렌에 손님이 돌아간 후 밤마다 유기견을 위해 문을 여는 카페에서 유기견들이 잠을 자고 있다. 사진: ustratios Papanis 페이스북

수년 전 그리스 아테네와 산토리니를 방문한 적이 있다. 카페에 앉아 고개만 돌려도 고대그리스 신전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인상 깊었지만 길거리를 떠돌아 다니는 유기견과 유기묘들이 많았던 게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유명한 관광지마다 덩치가 큰 개들이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거리를 왔다 갔다 하고 아예 늘어지게 잠을 자기도 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대부분 덩치가 컸고 숫자도 제법 많았다. 미케네 문명 유적지에는 뼈가 보일 정도로 삐쩍 마른 개가 있어서 갖고 있던 빵을 나눠주자 먹기 시작해 주변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산토리니에는 유독 고양이가 많았다. 고층의 호텔이 아니라 해변을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한 단층으로 된 호텔 방에 머물렀는데 저녁때 문을 열어 놓으니 고양이들이 방으로 속속 들어왔다. 문을 닫으면 답답해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간 묵었던 손님들과도 합숙(?)의 경험이 있었던 것인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서너마리가 갸르릉 소리를 내며 골골대기 시작했다. 이들 고양이들은 아침까지 함께 잠을 자다 새벽이 되자 문을 긁으며 나가겠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 처음 본 고양이들과 하룻밤이라니, 기억에 남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시위 때 마다 등장해 화제가 된 유기견 루카니코스. 루카니코스는 2014년 1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AFP=연합뉴스

그리스에 대해서는 동물의 추억을 갖고 있던 중 2011년 그리스 경제위기 당시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시위 현장마다 등장해 스타가 된 유기견 루카니코스(‘소시지’라는 뜻) 기사를 접했다. 시위대 곁에서 경찰을 향해 맹렬히 짖어대는 사진이 전세계에 퍼지면서 미 잡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후보까지 올랐을 정도로 인기였다. 사진 속 루카니코스는 그리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유기견 종류였다. 시위대 사람들이 루카니코스를 예뻐했고 루카니코스도 이들을 좋아하고 따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스에 있는 유기견은 60만마리 이상이다. 문제는 그리스 내에는 유기동물을 도와줄 대규모 동물보호단체가 없는데다 동물을 주로 병이 있거나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중성화가 동물들의 본성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 매일 수천마리가 새끼를 낳고 있다고 했다. 특히 경제위기 동안 그리스 인들은 더 이상 반려동물을 돌볼 수 없어 동물을 버렸고, 먹이를 찾아 관광지에 몰려든 개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고 했다.

한동안 그리스 유기견 유기묘에 대해 잊고 있던 차 최근 외신에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미틸렌에 손님이 돌아간 후 밤마다 유기견을 위해 문을 여는 카페가 있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유기견들이 소파에 나란히 몸을 말고 자고 있는 이 사진은 수천번 넘게 사회관계형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됐다고 한다. 카페 이외에 그리스에서도 유기동물을 먹이고 보살펴주는 이들도 있다. 또 자료를 찾아보니 영국 등도 그리스 유기동물 구조에 나서고 있었다.

이 같은 지원과 구조의 손길이 많아져 더 많은 그리스 유기견 유기묘들이 올 겨울 따뜻하게 나기를.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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