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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박근혜 의원 대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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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박근혜 의원 대 박근혜 대통령

입력
2015.1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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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주의자 면모 보였던 의원시절

청와대 들어가 의회압박으로 돌아

대화와 설득, 소통 다시 주문할밖에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쟁점법안들의 조속한 처리를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쟁점법안들의 조속한 처리를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인 2013년 9월16일 국회 사랑재에서 박 대통령과 당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민주당 김한길 대표 간 3자 회담이 열렸다. 대통령이 여야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하는 일반적 관행을 깨고 국회로 찾아가 여야 대표와 회담한 게 처음이어서 신선했다. 회담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박 대통령이) 5선 국회의원을 한 의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요즘 분위기에선‘의회주의자 박근혜’라고 하면 웬 망발이냐고 비난이 쏟아지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만은 않았다. 박 대통령이 15대 국회 때인 1998년 4월 대구 달성 보선에서 당선된 뒤 내리 5선 의원을 거치는 동안 쌓은 의회주의자로서의 내공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등원한 바로 그 해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공동 서명했다. 지난 여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 등의 파문을 낳았던 국회법개정안보다 더 강제력이 있는 내용이었다. 의회주의자로서의 싹수를 보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의 일이다. 대기업의 미디어 산업 진출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 법안에 집착했던 청와대는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통한 강행처리를 주문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소속 박근혜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하고 나와 “쟁점법안일수록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권상정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청와대의 일방적 요구를 거부하고 국민이해와 공감대를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의회주의의 참된 면모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야당대표로서 여당의 독단적인 국회운영에 극구 반대하고 대화와 합의를 통한 의안 처리를 주장했다. 그 당시엔 지금의 야당은 물론이고 과거 투철한 의회주의자였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당 시절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에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자민련 교섭단체 인정에 반대해 소속의원들을 이끌고 장외투쟁에 나서자 국회정상화를 주장했다. 이 역시 의회를 중시하는 의회주의자로서 손색 없는 면모다.

하지만 요즘 박 대통령에게는 의회주의자로서의 과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시급한 법안처리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기회만 있으면 국회를 질타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일을 제쳐 두고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흔들리는 작금의 상황”(정의화 국회의장, 18일 이만섭 전 국회의장 영결식사)의 한 가운데에 사실은 박 대통령이 있는 것이다.

국정을 이끌어가는 대통령으로서 경제활성화 등에 긴급한 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는 야당과 선진화법 규정만 따지고 있는 국회의장을 크게 못마땅해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야당 대표로서 각종 법안 처리를 놓고 정부 여당과 맞섰던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3,000개에 달하는 각종 개혁법안이 야당의 반대로 국회문턱을 넘지 못하자 격렬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지지자와 반대진영 양쪽에서 비난을 샀던 한나라당과의‘대연정’제안도 사사건건 국회에서 야당에 의해 제동이 걸리자 내놓은 발상이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대연정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지금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이 했던 야당과의 대화나 설득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 살아온 역정 등이 반영된 스타일 탓이겠지만 내가 옳으니 무조건 따라 오라는 식으로 윽박질러서는 야당이 물러설 리 없다. 국민들 상대로 총선 심판론을 호소해 의원들을 압박하는 것도 별 효과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하락하는 등 역풍이 일고 있다. 박근혜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역시 대화와 설득, 소통의 정치를 펴는 것이 바른 해법이 아닐까?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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