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2년째 공익법인 45곳 분석

수천억원 기부금 받는 26곳
공시 양식 안 지켜 분석 못해
사업관리비·모금활동비 항목
'0'으로 기재한 엉터리 공시도
정보 접근 투명성 평균 53점
"신뢰 못해 기부 안해" 21%나

국제구호단체를 통해 아시아의 한 개발도상국에서 2년 간 파견근무한 A(28)씨는 본부 운영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본부 지원으로 1년에 서너 차례 찾아온 단기 봉사팀은 가시적 성과를 위해 공연과 벽화그리기 등에만 몰두했다. 홍보 효과를 위해 1,000만원 가까운 비용을 들여 연예인을 동원했지만 당장 화장실조차 부족한 판자촌 아이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A씨는 “장기적 안목으로 실질적 도움을 주기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 쓰는 돈이 아깝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며 “기부단체 내ㆍ외부에서 운영 효율에 대해 보다 정밀한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지난 1일 52조원에 달하는 자신의 주식 99%를 자선 사업에 쓰겠다고 발표해 기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기부금 규모는 5년 전에 비해 25%가량 증가한 12조4,900억원으로 우리도 어느 정도 기부문화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기부단체들의 방만한 실태가 드러날 때마다 단체에 대한 불신 역시 커진다. 한 설문에서 기부하지 않는 이유로 ‘기부를 요청하는 단체를 믿을 수 없어서’가 2위(20.8%)를 차지하기도 했다.

국세청이 올해부터 공익법인 공시제도를 강화한 것은 공익법인들에 보다 높은 투명성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새 제도에서는 공시대상이‘총자산 10억원 이상이거나 수입 5억원 이상’에서 ‘총자산 5억원 이상이거나 수입 3억원 이상’으로 대폭 확대됐다. 또 수입내역을 상세히 밝히고 ‘고유목적사업 필요경비 세부 현황’항목을 추가해 사업비와 사업관리비를 명확히 구분하도록 했다. 관리당국뿐만 아니라 기부자들도 단체의 살림살이를 낱낱이 지켜보게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가이드스타와 함께 45개 대형 공익법인들의 기부금 사용 실태를 ‘효율성’과 ‘투명성’지표로 살펴본 결과, 기부단체들이 기부자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먼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에서 효율성 지표는 단체의 설립근거인 고유목적사업의 총비용 중 순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데 쓰인 사업비 비중으로 정했다. 그러나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어린이재단 등 많게는 수천억원의 기부금을 받는 공룡 단체를 포함, 26개 단체들은 공시 양식을 지키지 않아 아예 분석조차 할 수 없었다.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의 경우 신고한 직원 수와 인건비(급여+퇴직급여)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1인당 연간 인건비가 최저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156만원으로 나와 공시 내용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됐다. 한국해비타트나 마리아수녀회처럼 사업비나 사업관리비 항목을 아예 0으로 기재한 엉터리 공시도 여전히 눈에 띄었다. 승가원, 홀트아동복지회 등 18개 단체는 모금활동을 위해 사용한 비용을 0으로 기입하기도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어린이재단 등은 각종 대중매체에 버젓이 광고를 내보내면서도 광고선전비를 0으로 신고했다.

정보 접근성을 평가한 ‘투명성’은 낙제 수준이었다. 가톨릭대 행정학과 채원호 교수 연구팀과 숙명여대 경영학과 박종성 교수 연구팀은 45개 단체 홈페이지의 ▦기본 정보공개 성실성 ▦재무보고서 접근성 ▦재무현황 요약표 ▦이사회 정보 ▦감사정보 등 5개 지표를 공동 조사해 100점 만점을 매긴 뒤 15점 단위로 구간 등급을 매겼다. 그 결과 평균은 53점으로 D등급이었으며 F등급을 받은 곳도 10곳에 달했다. 기독봉사회의 경우 32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운용하지만 홈페이지조차 없었고 지난해 1,169억원의 기부금을 받은 유니세프조차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명단이 공개되어 있지 않았다.

전문 비영리기구 평가기관만 171개에 달하는 미국이 방만한 기부단체들을 줄줄이 퇴출시키는 것과 달리 우리는 해마다 부실공시가 발견되는데도 관리 당국은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은 “정작 한 해 성적표에 해당하는 공시자료조차 부실하게 만들면서 연말만 되면 모금을 호소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는 국세청에 공시자료를 제출한 7,484개 공익법인 가운데 ▦연간 기부금 수입 30억원 이상으로 ▦외부 감사를 받고 있으며 ▦기업ㆍ가족재단 등 대중모금과 거리가 먼 단체를 제외해 대상을 추렸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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