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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려고 대출까지... 미대생 울리는 ‘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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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려고 대출까지... 미대생 울리는 ‘졸전’

입력
2015.12.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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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만원 대 갤러리 대관료부터

작품 제작비까지 학생들 부담

졸업용 적금 들거나 졸업 미루기도

기량 발굴보다 일회성 이벤트 그쳐

“학교가 공간 지원 등 부담 나누고

진로 도움되는 졸업 형태 고민을”

내년 2월 서울 S여대 시각디자인과 졸업을 앞둔 A(23)씨는 최근 졸업전시회 비용으로 50만원을 납부하라는 학과 측 통보를 듣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졸업준비위원회가 졸업전시회를 한다며 빌린 서울 종로의 한 갤러리의 대관료는 700만원. 모든 비용은 예비 졸업생들이 수십만원씩 십시일반으로 갹출해 충당해야 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지금도 학자금 대출을 갚아 나가고 있는 A씨는 은행 대출창구를 다시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졸업 시즌이 다가오면서 졸업전시회를 앞둔 미대생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대관료는 물론이고 전시 작품에 들어가는 부대 비용까지 합할 경우 일인당 수백만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20일 “미대생들 사이에서 등골을 휘게 하는 졸업전시회를 두고 말 그대로 전시회만 하면 망한다는 뜻에서‘졸전(卒展)’ 이라는 자조가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연말이면 서울 인사동 갤러리들은 전시회 장소를 물색하려는 미대생들의 문의로 문전성시다. 인사동 B갤러리는 10,11월 서울 유명 사립대 3곳에 전시회 공간을 내줬다. 한 대학은 갤러리 5개 전시관을 통째로 빌리기도 했다. 이 갤러리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졸업전시가 열리는 연말을 성수기로 분류하고 있다”며 “일주일 기준으로 전시관 1개에 400만원, 5개관 전체를 사용하면 2,190만원 정도가 든다”고 전했다. 적잖은 비용이 들지만, 계약은 보통 1년 전 마감된다고 한다.

대관료뿐 아니라 전시회 출품에 드는 재료 값도 만만치 않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정모(24)씨는 전시 출품작으로 제출할 자동차 모형을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데에만 600만원을 썼다. 이 외에도 인테리어 비용으로 12만원, 작품ㆍ프로필용 촬영비 15만원, 포스터와 전시회 운영금 20만원 등을 지출했다. 정씨는 “신입생 때부터 졸업용 적금을 들기도 하고 과도한 전시회 부담에 졸업을 미루는 동료도 여럿 봤다”고 귀띔했다.

졸업전시회가 졸업의 필수 요건은 아니다. 작품을 제출해 심사만 통과하면 학업을 마치는데 별다른 제약은 없다.

하지만 예비 졸업생들은 관행으로 굳어진 졸업전시회를 무작정 외면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지난해 인사동에서 졸업전시회를 한 이모(24)씨는 “몇 해 전부터 유명 갤러리를 대여해 전시회를 여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며 “학과 위상이나 선배들과의 관계를 감안할 때 참여를 거부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고 말했다.

학생 수준에 감당하기 어려운 과도한 비용지출에도 불구하고, 졸업전시회는 대부분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황모(25)씨는 “방문하는 업계 관계자라고 해봐야 거의 지도교수에 인사하러 온 정도”라며 “학생들은 관계자 명함 한 장조차 받기 어려워 사실상 ‘일주일짜리 자기만족용 학예회’나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학교 측은 “졸업전시회의 모든 절차는 학생 자치로 진행되고 있다”며 수수방관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측이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학교가 교내 공간을 지원해 전시 비용을 줄여주는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졸업의 의미를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경기대 시각디자인학과 박용원 명예교수도 “‘보여주기’만 강조하는 졸업전시에 연연하기보다 인턴십 등 진로와 실질적으로 연결되는 다양한 졸업 형태를 대학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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