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사원 희망퇴직 논란
어려운 취업 관문 뚫고 입사했는데
“손쉽게 직장 잃을 수 있다” 현실로
초년생은 문책 배제하던 문화에서
이제는 나이에 관계 없이 구조조정
연차 애매하면 재취업하기 힘들어
“공무원 시험 봐야하나” 불안 확산
게티이미지뱅크.

“팀에서 어린 직원부터 ‘찍어서 퇴직’(찍퇴) 시키기 시작해 불안감이 있었는데, 실제 언론에서나 보던 실직 노동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3년차 대리 A(30)씨는 지난 9일 임원의 갑작스런 호출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3,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으로 팀원 10여명 중 절반이 이미 회사를 나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A씨는 면담에서 “희망퇴직 대상이다. 내년에는 정리해고를 할 예정이라 위로금을 줄 테니 지금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가지 않으면) 내년에 없어지는 부서로 보내겠다”는 말도 들었다. 사실상 정리해고된 그는 17일 “앞서 퇴직한 선후배와 동기들도 아직까지 재취업을 못한 사람이 태반이라고 들었다”며 “경력직 면접장이 두산인프라코어 퇴직자 모임이 될까 걱정된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두산인프라코어 희망퇴직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에 있던 1, 2년차 신입사원과 3~5년차 대리급까지 대상에 포함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어려운 취업 관문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사회 초년생들도 손쉽게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핵심부서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당장 일할 사람이 필요해 어린 사원들이 우선적인 정리 대상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1, 2년차를 인력 구조조정에서 제외하도록 물러섰지만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 ‘저연차 찍어내기’ 우려가 말끔히 가신 것은 아니다. 20, 30대는 가급적 구조조정이나 문책 대상에서 배제해주던 대기업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STX조선해양은 지난 4일부터 20대를 포함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 중이다. 삼성물산도 건설부문을 중심으로 나이와 관계 없이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기 불황 여파 속에 실적 부진을 겪는 건설과 조선업 등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국내 굴지의 무역회사에 다니던 3년차 사원 B(30)씨는 올해 10월 회사에서 쫓겨났다. 상사의 실수로 회사가 억대 손실을 입자 팀의 막내인 B씨도 권고사직 대상에 올라 해직된 것이다. B씨는 “책임자 급인 차장 이상만 해고될 줄 알았는데 나 같은 말단까지 불똥이 튈 줄 몰랐다”며 “애매한 연차에 회사를 나오게 돼 경력을 살려 재취업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하소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30세대 젊은 직장인 사이에선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대학 시절 봉사활동과 해외연수, 공모전 경력을 쌓아 어렵게 삼성 계열사에 입사한 이모(29)씨는 “주변에서 이제라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하소연까지 나온다”며 “회사에서도 실적 경쟁과 상사의 비위 맞추기가 과열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임원진과 주주 모두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두산인프라코어는 직원부터 잘라낸 것이 문제”라며 “이번 상황을 통해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쉽게 해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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