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을학기를 마무리했다. 어떤 강의에서든 한 번쯤 꼭 언급하는 이가 파커 파머다. 파머는 미국의 교육학자이자 교육운동가다. 그의 ‘민주주의의 마음을 치유하기(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는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이다. 우리말로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제목으로 옮겨져 있다.

파머에 따르면 우리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란 감정을 포함하는 자아의 핵심이다. 인간의 지적ㆍ정서적ㆍ신체적ㆍ상상적ㆍ경험적ㆍ관계적 앎의 방식이 수렴되는 중심부가 곧 마음이다. 파머는 우리 시대에 이 마음이 깨어지고 부서져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마음의 고통’의 다른 말이 정체성의 위기다.

마음의 고통은 인간 본래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실존적 존재이자 정치적 존재다. 실존의 허무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마음의 고통이 된다. 그리고 공동체의 규범과 질서를 제공해야 할 정치가 더 이상 희망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마음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 파머는 우리 시대에 정치가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절박한 인간적 요구를 무시한 채 편리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민주주의와 공공선에 기여해야 할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우리 시대의 정치는 ‘비통한 자들의 정치’인 셈이다.

비통한 자들의 정치를 생각하면 우리 정치가 절로 떠오른다. 파머 이론을 소개하면서 강의 시간에 나는 우리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세 가지는 진리ㆍ사랑ㆍ정치라고 말하곤 한다. 실존적 고민에는 진리가, 관계적 고독에는 사랑이, 공적인 난제에는 정치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사회에서 정치를 민주주의와 등치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는 공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제도다.

문제는 우리 정치 현실에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우리 사회에선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라 정치사회와 경제ㆍ시민사회 간의 시간 격차가 커져 왔다, 변화 속도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일종의 ‘정치 지체(political lag)’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정치 지체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사회의 복합성 증대에 따라 공적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게 하나라면,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정치사회의 혁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다른 하나다.

정치 지체를 특징짓는 두 가지 경향은 정치적 무관심이 커지는 ‘탈정치화’와 가치ㆍ제도가 아닌 인물을 중심으로 정치적 지지가 형성되고 동원되는 ‘팬덤화’다. 막스 베버가 강조했듯 정치에서 리더십은 대단히 중요하다. 목소리가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시선이 없는 이들에게 시선을 주는 게 정치적 리더의 역할이자 이른바 ‘정치적 대표성’의 요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중요한 것은, 리더의 문제 해결 능력이다. 소수의 리더들에 대한 열광적 지지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든 국회든 국민 다수가 기대하는 정치적 문제 해결 역량은 더없이 취약하다. 당장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올해 메르스 사태를 돌아보라.

열광의 팬덤화가 이내 환멸로 바뀌고, 켜켜이 쌓이는 환멸이 결국 정치적 무관심을 증대시키는 게 한국정치의 현주소다. 정치적 비통함의 본질은 이렇게 정치적 무관심이 커진다 하더라도 정치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15년 현재의 우리 사회가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헬조선’이라면, 이 헬조선을 탈출할 수 있는 일련의 제도개혁은 보수와 진보 간의 정치적 교환, 다시 말해 정치사회의 생산적 타협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이제 두 주만 지나면 2016년이 된다. 4월 총선이 우리를 기다린다. 선거구 획정, 야권 재편, 선거 구도와 프레임 등 모든 게 불투명하지만 정치의 시계는 오늘도 째깍째깍 어김없이 흘러간다. 과연 언제쯤 우리 정치는 비통이 아닌 희망, 유동적 불확실성이 아닌 신뢰할 만한 전망을 안겨줄 수 있을까. 이 헬조선의 나라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진리와 사랑과 정치뿐이라는 믿음만은 결코 저버리고 싶지 않다. 정치사회의 일대 분발을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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